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에 대못질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말을 남기며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윤 전 위원장의 발언은 외환, 우리은행의 매각과 얽히면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벽을 쳐 놓은 금산분리 문제가 계속 그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2005년 말 현재 25개 대기업집단이 67개 금융기관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산업자본이 은행을 제외한 다른 금융기관을 소유하는데 대해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따라서 현재의 금산분리 정책은 실질적으로 기업, 구체적으로는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는 은산(銀産)분리 정책이며 단순한 재벌의 금융업 진출 허용이 아닌 금산분리의 완전한 철폐에 관한 논란이라 하겠다.
고객의 예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은행은 사전적으로는 기업과 사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통해, 사후적으로는 기업감시를 수행하여 경제 내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기능한다. 기업 특히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경우에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대출이 계속 이루어지고 구조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재벌과 그 계열사에는 이득이 될 수 있으나 결국 경제 내의 자원배분을 왜곡하여 더 큰 손실을 경제 전체가 부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은행은 단순히 고객에게 예금을 대출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지급결제 등 경제의 원활한 기능을 위한 역할 역시 수행한다. 이 때문에 은행의 부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 기업의 부실과 파산이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비해 훨씬 심대하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경우 대주주로서 유한책임 만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은행의 경영진으로 하여금 고위험, 고수익 사업을 선호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각종 규제와 감독체제, 예금보험제도와 같은 금융안정망을 통해 은행의 안정성, 궁극적으로는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통한 거대 기업의 탄생을 의미한다. 거대 기업의 부실화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우려하는 정부는 이를 조기에 정리하지 못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덫에 빠지게 되고 이는 경영진의 위험추구를 더욱 조장하여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흔드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은 그동안 많은 사례와 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은행 부실화에 따른 손실은 은행의 소유주가 아닌 예금자들과 공공자금의 투입과정을 통해 종국적으로 일반 국민들이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금산분리의 철폐를 요구하는 측은 금산분리 철폐를 통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른 산업자본의 경영능력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기관 경영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으며, 또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닌 대규모 금융기관을 양성하기 위해 현재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여유자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업,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투자처와 성장 가능성이 제약되어 있다고 해서, 또한 금융기관, 특히 은행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의 증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산업자본으로 은행을 소유하게 하는 것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에 따른 심각한 폐해를 간과한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반도체나 조선업과 같은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 재벌 계열 금융사의 경영성과는 평균적으로 비계열 금융성과의 경영성과를 비교해서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는 제조업에서의 뛰어난 경영능력이 금융기관 경영에도 그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환은행, 우리은행의 매각과 관련하여 더 이상 국내 은행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라는 논리 역시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발상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이미 수출로 우리 경제를 성장시켰고 전세계로 그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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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에서도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양하는 한편 국내 금융기관들은 해외진출을 서두르고 있고 일반 투자자들의 해외투자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삼스럽게 해외자본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내며 이를 근거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에 따른 심각한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에 미치는 위험성은 이미 각국의 경험과 이를 분석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특히 IMF 경제위기를 겪은 지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도 금산분리 철폐가 요구되는 상황은 우리가 너무 쉽게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나하여 걱정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