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판사님의 잘못된 나라 걱정

[MT시평]판사님의 잘못된 나라 걱정

신진영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2007.09.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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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집행유예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이례적으로 자세히 공개된 판결 사유와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몽구 회장 판결과 며칠 후에 내려진 김승연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재벌 회장들은 늘 휠체어를 타고 법적인 곤경에서 빠져나온다고 비유하였듯이 이번 경우 역시 그동안의 재벌 총수와 관련된 기소와 판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대차 판결을 내린 판사님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현대차의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그런데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이라는 지배주주에 의해 경영의사 결정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될 경우 현대차는 경영공백 상태에 빠져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록 죄는 지었지만 경영에 복귀하여 국가경제에 기여할 기회를 주기위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현대차의 경우 뿐만 아니라 두산을 비롯한 다른 재벌 총수와 관련된 형사 판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다.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님은 일반 서민층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고심 끝에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될 경우 판사님의 우려처럼 현대차와 우리 경제가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이 몇 년간 실형을 산다고 해서 현대차와 우리 경제가 심각한 곤경에 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차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크다. 그러나 현대차가 잘못된다고 그 근간이 휘청일 정도로 우리 경제의 구조가 취약하지는 않다.

IMF 경제위기 시에 대우를 비롯한 다수의 재벌그룹이 넘어졌지만 우리 경제는 몇 년 사이에 그 어려움을 모두 극복할 정도로 이미 성숙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현대차 경영에 있어서 정몽구 회장의 위치는 절대적이지만 정몽구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직접 경영을 진두지휘하지 못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기업이 넘어갈 정도로 현대차가 허술한 회사는 아니다.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못지않게 사회봉사명령의 내용과 판결문 역시 필자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판사님이 말씀하신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게 낫다”라는 말은 불법행위가 벌어지지 않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옳은 말이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역대 부호들은 이 말을 충실히 이행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하지만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와 반하는 거액의 기부를 사회봉사명령으로 내리는 것은 결국 돈으로 집행유예를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간다.

 

판사님의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충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해가 되고 이번 판결을 통해 재벌들의 불법 행위가 방지되기 보다는 도리어 조장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재벌과 관련된 사건에서 일관성 있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대마불사 (大馬不死), 대마무죄 (大馬無罪), 유전무죄 (有錢無罪)라 하겠다.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일단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많은 개인 재산을 모으며 기업의 경영의사 결정을 재벌 총수에게 집중되도록 하면 설사 불법행위가 적발된다 하더라도 총수 공백에 따른 경영 위기와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 미칠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구실 삼고, 거액의 사회 공헌을 약속하기만 하면 언제나 쉽게 풀려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몽구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로 인해 일시적으로 현대차와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이번 기회로 재벌의 불법·탈법 행위와 분식회계, 편법상속과 같은 부도덕적인 경영, 정경유착과 부패가 방지될 수 있다면 종국적으로 우리 경제를 더욱 강하고 견실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정몽구회장이 저지른 횡령과 배임은 주주를 포함한 투자자들의 이익을 해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 행위로서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우리나라의 투자자 보호가 얼마나 미약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라 하겠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포타와 쉬라이퍼 교수는 50여 개국을 비교 분석하여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법적 체제의 확립과 엄격한 집행이 자본시장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자본시장의 발전이 경제발전과 직결된다는 결과를 밝히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근간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이번 판결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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