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시아, 빈곤탈출 희망찾기]<1-1>그라민의 기적
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우리 눈에는 몽둥이를 든 채 출입을 통제하는 군인들의 살벌한 모습이 들어왔다. 공항 출구에 둘러친 철창 사이로 무수한 걸인들이 보였다.
조금만 걸음을 멈추면 손을 내밀며 구걸했다. 우리 돈으로 100원도 되지 않는 5타카를 벌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릭샤(삼륜차)꾼들.

이곳은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다.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1604명/㎢), 매년 홍수 때마다 전 국토의 3분의 2가 물에 잠기는 나라다. 그런데도 영국 심리학자 로스웰의 2002년 조사에서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로 측정된 '요상한' 나라다.
2006년, 방글라데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라민은행과 이 은행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그 주인공이다.
은행가가 노벨경제학상도 아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순간, 자본 혹은 자본가는 착취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류의 고정관념은 뒤집어졌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꿔주고 이들이 소득을 높이게 돕는다. 2007년 5월 기준으로 담보가 없는 빈곤층 720만명이 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 받았다. 이들의 상환율은 98.85%. 이들의 58%가 빈곤선을 넘어섰다.
보그라 지역에 사는 도이보티(55)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소작농과 삯바느질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18년 전 그라민은행에서 7000타카(BDT), 우리돈 9만4000여원을 융자 받아 암소를 샀다. 그 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그와 남편은 암소한테서 얻은 우유를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함께 책장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장마철이면 비가 새는 초가집에서 살던 그와 가족은 지금은 양철지붕에 식수펌프까지 설치된 '번듯한 집'의 주인이 됐다.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묻자,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웃음 지었다. 우리 눈에 그의 집안은 여전히 궁핍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와 가족에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진보였다.
그라민이 일으키는 진보는 정보기술(IT), 통신산업으로 퍼져갔다. 샤하나치(22)씨는 3년 전, 그라민은행 지점에서 '폰레이디'를 알게 됐다. '폰레이디'는 그라민은행의 융자자금으로 '그라민폰'을 구입해 마을사람들에게 전화를 빌려주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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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하나치씨는 이 사업으로 1분당 2타카, 약 27원을 사용요금으로 받는다. 릭샤꾼들이 5타카를 벌기 위해 흘리는 땀에 비하면 적지 않은 수입이다. 이제 '그라민폰'은 이동통신전화기 시장의 40%를 점유하면서 부동의 1위 기업으로 떠올랐다.
그라민의 실험은 은행, 통신회사에서 끝나지 않고 요거트회사, 안과병원, 재생에너지회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 '삼성', 'LG'에 버금가는 브랜드파워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라민 계열사들의 목적은 여타 기업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가난 없는 세상'을 일구겠다고 한다. 이것을 유누스는 '사회적 비즈니스' 즉 사회적 기업이라고 말한다. 1997년 2월, 마이크로크레디트 정상회담에서 유누스는 이렇게 연설했다.

"인간은 라이트 형제가 12초 동안 공중을 날았던 이래 불과 65년만에 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정상회담이 열린 오늘로부터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우리의 달에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가난 없는 세상을 이룩할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 못잖게 혁명적인 '자본'과 '자본가'의 실험이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