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대선결과에 따라 당선자가 정해지면, 내년 2월 취임하는 대통령은 먼저 새 정부 출범에 맞추어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일관성 있게 끌고나갈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인선하게 될 것이다.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면면이 전면 물갈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국무위원도 아니면서 국무회의에 출석·발언하고 다른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공정거래위원장은 어떠한가?
공정거래법에 위원장의 임기가 3년으로 정해진 것은 1981년 출범당시 경제기획원 산하 공정거래실에 불과하던 조직을 1986년 독립위원회로 확대·개편할 때였다. 당시 공정위가 경제기획원에 속해 있었음을 감안하면 공정위원장을 비롯한 위원의 임기를 3년으로 정한 것이 오히려 놀랍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전두환정부의 마지막 위원장인 이진설씨가 제4대 위원장에 임명되어 불과 1년을 채우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위원장이었던 이남기씨(제11대)에 이르기까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보전한 위원장은 전윤철씨(현 감사원장)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3월, 3년의 임기를 마친 강철규씨도 정권교체의 태풍을 겪지 않았고, 1988년 2월 노태우정부 출범 직후 임명되어 무려 5년을 위원장으로 재직했던 최수병씨(제5대) 또한 단 한 사람의 대통령만을 모셨다. 1986년 임기제 법정 이후 노태우(1988~), 김영삼(1993~), 김대중(1998~), 노무현(2003~) 4명의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그때마다 공정위원장도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 법에는 3년 임기에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실제 공정위원장의 임기중 대통령이 바뀌지 않을 때의 일이다.
법률상 위원장은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므로 다른 국무위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생명을 같이 하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임기를 존중하고는 싶었으나 선거공신에 대한 배려나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도무지 맞지 않아 불가피하다는 등 나름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공정거래법의 역할과 공정위원장의 임기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헌법상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경쟁질서를 보호하는 것이 공정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이처럼 신성한 임무를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공정거래법이고, 동법을 해석·적용·집행하는 기관이 공정위다.
그런데 경쟁정책이란 일견 누구에게도 눈에 보이는 득을 가져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이에크가 일찍이 지적한 ‘발견절차(Entdeckungsverfahren)로서의 경쟁’이란 기업이든 정부든 불합리한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여타 규제부서가 공정위를 탐탁하게 여길 수 없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쟁정책을 수립하고 경쟁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그 형태는 달라도 모든 선진국에서 나름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독립성의 요체는 재계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여타 정부부처의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정위원장은 시장과 경쟁을 보호하기 보다는 임명권자를 의식하게 되거나 여타 부처의 각종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자칫 공정거래법이 또 하나의 ‘보이는 손’으로 작용할 소지가 생긴다. 시장에서 누구나 지켜야 할 룰인 공정거래법과 정책이 대통령의 근사한 국정철학이나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면, 경쟁은 더 이상 발견절차가 아닌 것이다.
세계 최초의 독점금지법으로 알려진 1890년 미국의 셔먼법에 실체법 조항이라고는 거래제한과 독점화를 금지하는 두 개 밖에 없으며, 그 후 100년이 넘도록 이들 두 조항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의 독점금지법이 시대에 뒤쳐진다거나 예측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하는 견해는 찾기 어렵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및 위원장의 독립성은 철저히 지켜진다. 정권이 변해도 시장경제의 룰은 지켜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정철학이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시장에서 지켜져야할 룰을 쉽게 바꿀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공정위원장 자리는 대선의 전리품일 수도 없고,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가신이 차지해서는 안 된다. 공정위원장의 임기제 준수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 스스로 대통령이나 재계가 아니라 오로지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엄정한 법집행 시스템을 확립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