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고용 새로운 대한민국 만든다-7편]박효남 밀레니엄서울힐튼 조리부 상무

1978년. 가난한 18살 소년의 꿈은 '요리사'였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요리재료가 아닌 연탄이 들려 있었다. 직업군인 출신 아버지는 상경해 연탄배달을 하셨다. 소년은 부모님과 세 동생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갈 때 소년은 요리학원에서 중식요리를 배웠다. 3개월 만에 자격증도 땄다. 소년을 눈여겨 본 원장의 추천으로 하얏트호텔 주방보조로 들어갔다. 매일 몸무게의 2배가 넘는 감자를 깎고 또 깎았다.
힘들 땐 이를 악물었다. 강원도에 살던 어린 시절 소여물을 주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절반이 잘려 나간 신체적 약점이 있었지만 소년은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해 주방보조 생활에 적응했다. 중졸이라고, 어리다고, 무시하고 모욕적인 말로 괴롭히는 선배도 있었지만 제일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성실함으로 버텼다.
그렇게 23년이 지났다. '중졸 주방보조'였던 소년은 지난 2001년, 요리사 150명을 거느린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 총주방장이 됐다. 세계 주요도시에 210여 개 체인을 운영하는 힐튼호텔에서 총주방장으로 한국인으로 낙점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금도 국내 손꼽히는 호텔의 총주방장은 대부분 외국인일 정도로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그저 '요리사'가 되고 싶다던 소년은 더 큰 꿈을 이룬 셈이다. 16일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만난 박효남 조리부 상무(사진·52세)는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고생한 거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단단하고 다부진 체격처럼 박 상무는 거침이 없었다.

후라이팬을 처음 잡은 18살 소년 때와 총주방장이 된 지금, 박 상무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올해로 34년째 '요리' 두 단어에 인생을 걸고 매달리면서 갖은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한 번도 고생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그다.
"고등학교도 가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고생 많이 했겠다고 하는데 요리가 좋아서 스스로 택한 일이기 때문에 힘든 일도 즐기면서 했습니다. 꿈을 이루는 건 '로또'가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든 꿈을 이루려면 어려움 속에서 자기만의 노하우를 쌓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중학교 졸업장밖에 없던 그는 하얏트호텔 주방보조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을 들었다. 영어학원도 다녔다. 매주 일요일마다 휴일을 갖기도 힘들었던 주방보조가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박 상무를 지켜본 모두가 그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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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복입고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두고 보자'고 다짐했어요. 남들보다 2배 부지런히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했죠. 일찍 경험을 쌓으니 공부할 기회는 무궁무진했습니다. 호텔 지원으로 프랑스 요리연수도 다녀오고 조리 학사 학위도 취득했어요."
무엇보다 결정적인 기회는 1983년에 찾아왔다. 서울힐튼호텔 창립멤버로 입사해 당시 총주방장이었던 오스트리아인 요셉 하우스버거씨와 일할 수 있게 된 것. 하우스버거씨는 누구보다 혹독한 스승이었다.
1990년 처음으로 출전한 싱가포르 세계요리대회에서 재료로 준비한 성게알이 싱싱하지 않다며 현지 호텔을 쥐 잡듯이 뒤지게 한 장본인이 하우스버거씨다. 호된 훈련에도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한 박 상무는 결국 1996년 싱가포르 세계요리대회에서 금메달 5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요리에 뛰어든 박 상무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국가대표급 요리사로 성장했다. 지난 2010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대통령과 동행한 그는 해외 정상 등 귀빈들에게 맛깔 나는 한식을 대접해 깊은 인상을 심어줬는가 하면, G20서울정상회담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해 각국 정상의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다.
"요리를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이 정말 예뻐요. 꿈에 첫 발을 내디뎠으니 그걸 채우는 건 스스로의 몫입니다. 어느 주방에서 일하더라도 자기 이름 석 자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일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십 명씩 거쳐 가는 실습, 인턴 중에 이름을 떠올리면 "그 친구, 참 괜찮았지"하고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