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각하. 어떻게든 능력껏 돕겠습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등 세계 금융계를 움직이는 중앙은행장들을 다룬 책 '연금술사들(THE ALCHEMISTS)'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다룬 대목이 나온다.
70년대 닉슨 정부는 경제호황 유지를 위해 노골적으로 낮은 금리를 요구했고,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는 치솟는 물가에도 저금리를 유지했다. '각하'라는 깎듯한 존칭은 대통령과 중앙은행장의 관계를 상징한다. 번스가 조금이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할 기미가 보이면 닉슨 정부는 중앙은행 지배구조 개편설 같은걸 언론에 흘려 압박했다.
법적으로는 '독립기관'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중앙은행의 처지는 한국은행이 더하면 더했지 다를 게 없다.
한은 제1의 목표는 '물가안정'이지만, 경제성장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과거 정부들은 통화정책에 관여해 시장에 돈을 풀고자 했다.
근래 들어서도 이명박 정부가 열석 발언권'을 행사해 한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성태 총재의 후임으로는 'MB맨'으로 불리는 김중수 현 총재를 임명했다.
그래서 이주열 한은 총재 후보자의 내정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의외의 인사"란 말이 뒤따랐다.
통화정책 전문가라는 이유로 총재 하마평에 오르긴 했어도 실제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 시장은 박근혜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 만큼,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할 인물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박근혜정부가 시끄러운 청문회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후보자를 향한 한은 안팎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35년 한은맨으로서 독립성을 지킬 것으로 보는 기대도 있지만, '박근혜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서 임명된 데 대한 '보은 심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이 후보자의 성향상 정부의 3개년 계획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고, 금리 인상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후보자가 가계부채 억제, 내수부양에 힘을 쏟고 있는 정부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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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연준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실시하면서 신흥국에선 자본유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도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정부와 한은의 상호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금융 경제상황에 대한 일관된 평가와 인식을 갖게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또 "우선은 각자에게 주어진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며 정부와 한은을 분리했다.
"한은도 정부"라고 말했던 김중수 총재와는 다른 면모다.
시장은 이 후보자가 처음으로 주재하게 될 4월 금통위에서 "한은도 정부"라고 말했던 김중수 총재와 다른 면모를 보여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