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이달 3일 역외통제(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면제국에 한국을 포함하기로 하면서 대(對) 러시아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국의 '뒷북외교' 논란이 일단락됐다.
뒷북외교 논란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만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다 FDPR 대상에 들어갈 뻔 했다는 것인데, 정작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통상당국자들 사후 설명을 들어보면 '통상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교부가 섣부른 외교 방침만을 앞세우다 보니 발생한 외교참사'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관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자원안보국(BIS)는 지난 4일 FDPR 예외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하기로 우리 정부와 합의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지난달 24일 자국 기업의 러시아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규제와 제3국의 FDPR 규제 방침을 발표했다. FDPR 수출규제는 미국산 기술이나 SW(소프트웨어)가 사용된 제품·부품을 러시아에 수출 시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 제도다. FDPR을 적용받으면 우리 기업이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부품을 러시아 현지 공장에 수출할 때 미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뒷북외교 논란은 미국의 FDPR 면제국가 32개국 리스트에 한국이 빠지면서 불거졌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경제 제재에 적극적인 우방국만 FDPR 면제국에 포함시키고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던 한국을 소외시켰다는 얘기다. FDPR 면제국가에 포함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이 러시아로 수출을 하기 위해선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보니 불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실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외교부다. 외교부는 미국의 FDPR 규제가 발표되기 직전인 24일(한국시간)까지 "러시아에 대한 독자제재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경제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을 때에도 외교부 당국자는 "일부 국가는 금융제재 등을 고려하는데, 우리는 이걸(독자제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워싱턴 정계 안팎에선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한국이 대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으로 나서며 동맹을 훼손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같은날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제제재 동참, 독자제재 불가' 방침에 대해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은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고 또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게 대표적이다.
정부의 입장은 나흘만에 뒤집혔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러시아에 대한 금융·수출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미국과 FDPR 배제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FDPR 규제 가능성이 커져 뒷북 대응에 나섰다"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FDPR 협상을 맡은 통상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얘기는 다르다. 미국이 처음 FDPR 규제와 면제국 리스트를 발표할 당시에도 미국 상무부와 협의 채널은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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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에 따르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3일 워싱턴D.C에서 한미간 협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서 처음 (면제 대상) 리스트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산업부와 상무부 간 실무진이 협의하며 조율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은 상무부의 수출 규제 방침이 세워지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미국 측과 사전협의를 거쳐 러시아에 대한 제재 여부를 판단해야했다는 것이다. 미국 측도 한국의 수출 통제 시스템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결국 러시아에 대한 수출규제와 FDPR 면제는 시간문제였다는 얘기다.
미국이 애초에 FDPR의 면제조건으로 걸었던 것은 당사자국의 일정 수준이상 수출규제라는 게 이번 논란 초기부터 이어온 산업부의 입장이다. 단순히 우방국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아니라 FDPR 면제를 위해선 미국 수준의 대 러시아 수출 규제가 필요했다. 결국 독자제재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외교부의 설명과 달리 정부의 직접 수출규제와 FDPR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판단해야했다고 한다.
미국과 우리 통상 당국이 FDPR 논의 초반부터 협의를 이어온 것도 이같은 통상 업무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양국의 합의가 무르익기 전에 "독자제재는 없다"는 외교당국자 발언이 잇따라 나왔고, 마치 FDPR 규제에 임박해 외교적 판단 실수를 급하게 수습한 것처럼 비쳐진 셈이다. 알고 보면 뒷북외교까지는 아닐지라도 통상업무 특성을 고려치 않았거나 외교적 방침 또는 수사에만 몰두한 외교부가 저지른 아마추어 같은 '외교 참사'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