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發 에너지위기' 독일·덴마크 현지 가보니

"다들 올해 겨울이 춥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만난 한 한국 교민은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을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겨울이 더 문제라고 답했다. 러시아가 가스와 원유 등 자원을 무기삼아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면서 유럽은 에너지 위기를 맞았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면서 유럽 전체의 경기침체까지 우려된다.
19일 머니투데이의 현지 취재 결과, 독일 함부르크 지역의 전력을 공급 중인 덴마크 국적 전력회사는 지난 8월31일자로 1㎾h(킬로와트시)당 25.87센트(약 363원)였던 전기요금을 32.17센트(약 453원)로 25% 인상했다.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인 ㎾h당 112.9원의 4배를 넘는 금액이다. 기름값도 예외는 아니다. 함부르크 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959유로(약 2760원)로 지난해 평균 1.5유로에서 30% 이상 올랐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채택한 이후 부족한 에너지를 러시아산 가스를 통해 메워왔던 탓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가장 혹독하게 겪고 있다.
독일의 에너지 가격 급등은 함부르크의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함부르크의 대표 관광명소인 함부르크 시청은 원래 빼어난 야경으로 알려진 명소였다. 평소에는 저녁 8~9시까지 야경을 보기 위한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지만, 지금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시청 외벽을 비추는 조명을 소등한 탓에 일몰 이후 관광객이 사라졌다. 대형 분수쇼로 유명한 인근의 '알스터 호수'에서도 분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겨울철을 앞두고 함부르크 안팎의 공구상점에선 땔감용 목재가 동나고, 최근 개최된 에너지 관련 전시회에선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려는 문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독일은 모든 전기요금과 난방비를 집주인이 낸 뒤 매년 3~4월쯤 직전년도 관리비에서 정산하는데, 내년 정산 전기요금·난방비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함부르크 주민 모리츠 하스틱(Moritz Haarstick)씨는 "평소 수영을 즐겨하는 편인데, 에너지 대란으로 수영장 이용 가격이 올라서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다"며 "헬스장 온수도 특정 시간에만 나오는 탓에 특정 시간에 이용객들이 몰리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덴마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교민 A씨는 "한국 돈으로 한달에 14만원쯤 하던 전기요금이 이젠 30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별다른 생활 패턴 변화 없이도 전기료가 2배 이상 급등했다는 얘기다. 내년 1월부터는 가정용 전기요금에도 '피크타임제'가 적용돼 오후 6시 이후 피크타임에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일반 요금에 비해 7배가량 비싼 전기요금이 적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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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요금도 올해 연초 대비 2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올해 4분기 코펜하겐의 ㎥(세제곱미터)당 난방단가는 21.95크로네(약 4150원)로 올해 2월 10.196크로네에서 115% 급등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 겨울인 지난해 2월의 경우 코펜하겐의 난방비는 ㎥당 2.738크로네였다. 전쟁 이후 겨울철 난방비가 8배 이상 치솟았단 얘기다. 코펜하겐의 경우 3개월씩 난방비를 지불하는데 소형 사무실 기준 3개월 난방비가 한화 150만원에서 300만원 수준으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내년부터 가정용을 포함한 일반 전기요금에도 피크타임 할증을 적용한다고 해 '새벽에 빨래를 돌리고 밥을 지어야 한다'는 푸념이 나온다"며 "일부 사무실은 '화장실 갈 때 모니터 끄기' 등 전기 절약 캠페인을 벌이는 곳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유럽 지역 에너지 요금 부담이 커지면서 실질 소비력 감소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도 나온다. 가계의 수입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할 때 고정비 성격을 지닌 공공요금 지출이 늘면 그만큼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 11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독일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7월 전망치보다 1.1%포인트(p) 낮춘 -0.3%로 제시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대비해 올해 6~8월 석 달 동안 한 달 9유로에 모든 지하철·기차를 탈 수 있는 '9유로' 정책을 시행, 누적 기준 6500만명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또 내년 초 같은 방식의 '49유로 정책'을 시행, 차량용 기름 소비를 줄이고 가계 부담을 덜어줄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