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가게가 생겼다 폐업으로 사라지는 현실에서 세대를 이어 백년가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의 명물 '고향밀면', 영주의 쫄면 맛집 '나드리', 강원 강릉의 4대 한과 기업 '주식회사 명일'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단순히 오래된 가게가 아니다. 지역에서 쌓인 시간, 기술, 사람의 이야기를 품은 백년소상공인의 현재형 모델이다.
경주의 고향밀면은 이현주 2대 대표와 성정환 3대 대표가 전통의 맛을 지키기 위해 가업을 이어받았다.
경주 금리단길의 한 골목,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골목 끝에서부터 은은한 육수 향이 퍼진다. 고향밀면은 1980년대 한 할머니의 작은 식당에서 시작됐다. 세월 속에서도 맛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3대 대표인 성정환씨는 대기업 근무를 내려놓고 가업을 택했다.
성 대표는 "부모님 세대가 쌓아온 시간과 이 가게가 품어온 기억을 제 손에서 끊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SNS) 홍보, 조리 공정 표준화, 제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개발까지 운영 시스템을 현대화해 '손맛의 재현'을 넘어 '손맛의 전달'을 고민했다.
성 대표의 목표는 단순한 가게 유지가 아닌 고향밀면 브랜드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어디서 먹어도 똑같은 고향밀면의 맛을 고객들에 전달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고향밀면은 한 그릇의 밀면을 넘어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쫄면 하나에 승부를 건 나드리는 김정애 2대 대표와 정희윤 3대 대표가 이끌고 있다.
나드리는 메뉴가 많지 않다. 대신 하나의 메뉴에 40년을 담았다. 이들에게 쫄면은 단순한 메뉴가 아닌, 나드리의 역사이자 정체성이다. 3대 정희윤 대표는 방송사 PD 생활을 정리하고 가업을 선택했다.
정 대표는 "안정적인 길이었지만 이 브랜드가 제 세대에서 사라지는 건 더 견디기 힘들었다"며 가업계승의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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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부모 세대와의 운영 방식 차이, 변화를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를 재탄생시키고 밀키트 출시와 해외 진출까지 추진하며 '로컬 브랜드'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향해 가고 있다.
정 대표는 "저희의 무기는 '매운 맛'과 '스토리'"라며 "차별화된 맛과 다른 브랜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업력을 마음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과를 만드는 강릉의 한과 기업 명일은 무려 4대가 가업을 잇고 있다. 기업형 백년소공인으로서 전통을 산업으로 확장한 사례로 꼽힌다.
4대인 장원준 대표는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명일에 합류했다.
장 대표는 "기술은 끊기면 다시 만들 수가 없다"며 "백년가게라는 건 그 기술을 끊지 말라는 사회의 약속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명일은 쌀 흉작이라는 위기 속에서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공정을 재설계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선택은 명일의 기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명일은 직접 재배한 재료를 쓰고 지속적으로 기술을 연구하는 등 한과의 미래를 고민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같은 백년소상공인 육성 사업을 통해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우수 소상공인 등을 발굴한다. 백년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해서다.
지원 대상은 장기간 사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고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소상공인이다. 백년가게의 경우 업력 30년 이상 우수 소상인을, 백년소공인의 경우 업력 15년 이상 숙련 소공인을 선발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백년가게는 지역에서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가능성을 인정받은 '공공적 브랜드'이자 '살아있는 유산'"이라며 "끊어지지 않는 손맛은 솥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이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