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전북 남원시 운봉읍 승전로. 지리산 자락을 따라 들어가자 돼지 1만3000여 마리를 키우는 다산육종 농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사 안에서는 일반 백돼지와 함께 검은 털을 가진 돼지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순종 버크셔를 자체적으로 선발·개량한 '버크셔K'다.
다산육종은 단순히 돼지를 많이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품종과 혈통을 관리하고, 돼지의 특성에 맞춰 사료와 사육 방식을 달리하면서 일정한 품질의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같은 생산 방식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산육종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처음 시범 운영하는 '돼지 생산관리 인증제' 인증농장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됐다.
축평원은 지난 4월 인증 희망 농가를 모집한 뒤 서류심사와 현장검증을 거쳐 △다산육종(전북 남원) △길갈축산(제주 서귀포) △덕유농장(경북 경산) 등 3곳을 최종 선정했다. 품종·혈통을 바탕으로 교배 비율을 표준화하고, 농장 자체의 사양관리 체계를 갖춰 차별화된 육질의 돼지고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가 주요 평가 대상이었다.
농식품부·축평원이 올해부터 돼지 생산관리 인증제를 시범 운영하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획일화된 국내 돼지고기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소비자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돼지고기 시장은 오랫동안 생산성과 효율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98.6%는 요크셔·랜드레이스·듀록을 교배한 3원교잡종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생산성이 높다는 장점 때문이다.
생산관리 인증제는 기존 돼지 등급제와는 평가 지점이 다르다. 돼지 등급제가 도축 이후 도체중과 등지방두께 등을 토대로 규격을 평가한다면 생산관리 인증은 품종과 혈통, 교배, 사양관리 등 생산 단계에서부터 차별성을 확인한다.
국내 양돈산업은 오랫동안 생산성 향상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새끼를 많이 낳고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정한 규격의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 국내 돼지 대부분을 랜드레이스·요크셔·듀록을 교배한 3원교잡종이 차지하는 것도 이런 산업 구조와 맞닿아 있다.
반면 소비자의 돼지고기 선택 기준은 세분화되고 있다. 지방이 적은 고기를 찾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지방 함량이 높은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있다. 품종별 육질이나 풍미, 생산 방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기존 등급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별화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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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춘 다산육종 대표는 "과거에는 새끼를 많이 낳고 잘 크는 돼지가 중요했다"며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맛과 육질을 놓고 차별화할 수 있는 돼지가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다산육종이 버크셔 생산을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 2003년 말 남원시가 흑돼지 명품화 사업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년 넘게 순종 버크셔를 선발·개량해 자체 종돈인 버크셔K를 생산해왔다.
버크셔는 일반적인 상업용 돼지와 비교해 산자수가 적고 성장 속도도 느린 편이다. 생산성에서는 불리하지만 육질을 차별화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게 농장 측 설명이다.
다산육종은 단순히 '흑돼지'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대신 육질 특성을 수치로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도축 24시간 뒤 측정하는 pH다. pH는 보수력과 연도 등 돼지고기의 육질 특성과 관련되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오규석 다산육종 상무는 "현재도 제품을 설명할 때 단순히 맛있다는 표현보다 pH나 불포화지방산, 올레인산 함량 등 성분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며 "품종별 차이를 객관적인 정보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산육종이 버크셔K를 차별화하는 방식은 이름이나 외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 고기의 특성을 수치로 관리한다. 일반 돼지고기의 도축 24시간 후 pH가 통상 5.5~5.6 수준인 반면 버크셔K는 5.8 이상, 일부 개체는 6.0 이상을 보인다. 올레인산 함량도 약 42% 수준으로 관리한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한 사양관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질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를 확인한 뒤 원하는 특성을 가진 개체를 종돈으로 선발해 교배한다.
현재 버크셔K는 온라인 프리미엄 유통채널과 전문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는 제주 흑돼지와 지리산 흑돼지처럼 지역명이나 브랜드를 앞세운 돼지고기가 다양하게 판매돼 왔다. 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에 실제로 어떤 품종의 혈통이 얼마나 포함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생산관리 인증은 이 지점을 겨냥한다. 인증 과정에서는 종돈과 모돈의 혈통 기록이 전산으로 관리되는지, 품종별 교배 비율과 사양관리 체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등을 확인한다. 단순히 '흑돼지'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혈통을 바탕으로 어떤 생산관리 체계를 거쳤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앞으로는 단순히 흑돼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혈통이 얼마나 들어가 있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소비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며 "품종과 육질 데이터를 놓고 경쟁하는 시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는 제도의 첫걸음인 만큼 인증농장을 3곳으로 한정했다. 축평원은 실제 인증제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본 뒤 제도를 보완하고 향후 확대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박수진 축산물품질평가원장은 "돼지 생산관리 인증제는 우수한 관리 체계를 갖춘 경영체를 발굴해 소비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선택 기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앞으로도 유통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긴밀히 협력해 인증 축산물의 판로를 넓히고 제도를 안착시키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