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슬픔 감추는 인내와 절제의 엄마처럼…"

"심연의 슬픔 감추는 인내와 절제의 엄마처럼…"

김고금평 기자
2016.02.17 03:10

[인터뷰] 데뷔 31년만에 첫 리메이크 음반 낸 권진원…"박자 개념 없애고 이야기하듯 툭 던져"

데뷔 31년만에 첫 리메이크 음반 '엄마의 노래'를 낸 싱어송라이터 권진원. 그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며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로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데뷔 31년만에 첫 리메이크 음반 '엄마의 노래'를 낸 싱어송라이터 권진원. 그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며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로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피아노와 현이 이끄는 애상의 세상에서 그는 좀처럼 끌려다니지 않는다. 흐느적거리는 바이올린이 넌지시 슬픔 한 줌 뿌려도, 그는 단단한 바이브레이션으로 절제의 벽을 쌓는다. 왈츠라는 정형화한 3박자의 규율에도 그는 템포를 임의로 바꾸는 루바토(rubato)로 리듬을 지배한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세상의 존재가 그럴까. 나지막이 속삭이지만 심연의 슬픔에 휩쓸리지 않는 세상의 엄마를 대변하듯, 그는 그렇게 노래했다.

데뷔 31년 만에 처음 내놓은 리메이크 음반 ‘엄마의 노래’에서 권진원이 보여주는 미학은 작지만 강렬한 여운이다. 힘없고 나약해 보이는 엄마 뒤에 숨은 강인한 절제와 인내의 미덕을 쏙 빼닮았다.

“목청껏 부르기보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관조하듯 나지막이 불러봤어요. 드럼을 없애고 피아노와 스트링의 단출한 연주를 중심으로 둔 것도 그런 이유죠.”

엄마를 화두로 꺼낸 건 20대 딸을 둔 엄마라는 자신, 그 자신 앞에 여전히 서 있는 그의 엄마를 비로소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 아스라이 지나칠 법한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엄마, 아내, 여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강인한 어머니상의 대표격이었어요. 제가 20세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는데, 10년 뒤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가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수발을 드셨어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부터 시작한 제 20대는 나름 탄탄대로에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했지만, 돌아보니 회색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가 아픔이나 고통을 감추고 견뎌냈어야 할 그 시간과 환경을 그때는 몰랐거든요. 늘 긍정적 에너지를 주시던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이제야 생기면서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새 음반은 그의 엄마가 청춘 시절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불러 딸에게 들려주는,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인 셈이다.

그의 엄마가 가장 좋아했다는 가곡 ‘동심초’를 첫 곡으로 듣고 세 번 충격받았다. 우선 전의 노래들보다 한 톤 낮춘 묵직한 창법에 마디마다 놓치지 않는 바이브레이션이 ‘권진원답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비애를 뚫고 올라서는 그의 단단한 소리는 그 자체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왈츠의 정박자를 배반하며 리듬을 자유자재로 편성하는 능력에선 노래가 ‘불려지는’것이 아닌 ‘이야기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식의 반 박자 느린 템포에서 맛보는 묘한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시종 심장을 제어하기 때문. 마지막으로 가곡이 멋진 가요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장르의 경계도 허물었다.

“바이브레이션은 이번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대중가수와 클래식 가수의 어떤 지점에 놓이고 싶지 않다는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아우르는 힘이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생긴 듯해요.”

첫 곡에 쓰인 왈츠는 권진원이 작사, 작곡한 마지막 곡 ‘엄마의 노래’에서도 이어진다. 이 수미쌍관을 통해 그가 드러내고 싶었던 의미는 무엇일까.

가곡, 가요, 동요 9곡을 실은 새 음반에서 권진원은 슬픈 선율에도 무덤덤한 창법으로 노래한다. 전보다 톤도 하나 낮췄고 박자 개념도 무시했다. 앨범의 수록곡을 다 듣고나면 드라마 한편 본 듯한 느낌이 나는 것도 노래를 '부르지'않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가곡, 가요, 동요 9곡을 실은 새 음반에서 권진원은 슬픈 선율에도 무덤덤한 창법으로 노래한다. 전보다 톤도 하나 낮췄고 박자 개념도 무시했다. 앨범의 수록곡을 다 듣고나면 드라마 한편 본 듯한 느낌이 나는 것도 노래를 '부르지'않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3박자는 가장 교과서적인 리듬이죠. 그 리듬에는 원형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요. 요즘 작업 방식은 모두 박자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연주를 입히지만, 이번에는 그런 형식을 모두 버렸어요. 연주와 보컬을 동시에 녹음하면서 소위 제멋대로 이야기하듯 감정을 녹여내자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렇게 하면 정교함은 떨어지겠지만, 노래가 지닌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할 수는 있으니까요.”

새 음반은 가곡, 가요, 동요 등 따라부르기 쉬운 아름다운 한국 노래 9곡이 실렸다. ‘동심초’에 이어 ‘사공의 노래’, ‘세노야’를 거쳐 ‘보슬비 오는 거리’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꾸린 슬픈 그리움의 추억들은 더 극한 슬픔의 지점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애이불비 정서를 이입하기도 한다.

산뜻한 기타 소리가 처음 등장하는 ‘하숙생’에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여전히 이 묵직한 보컬리스트의 시선은 ‘가을밤’에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며 ‘고향의 봄’을 떠올리는 사무치는 그리움의 흔적을 좇는다.

노래를 다 듣고 나니 그의 말마따나 가곡을 들었는지, 가요를 청취했는지, 동요를 따라불렀는지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장르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슬픈 드라마 한편을 집중해서 본 느낌이랄까. 권진원은 ‘슬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평가는 이제 그의 몫이 아니다.

무덤덤하게 툭 던지는 무채색의 언어, 그 언어를 ‘휴~’하며 한 템포 쉰 뒤 이어가는 스토리에 눈물지을 수 없는 현실은 더 슬프다. 하루에 딱 한 번, 거기까지만 눈물 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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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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