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기적 만든 '다큐 3일: 어바웃타임', 낭만이 살아있네

10년 만의 기적 만든 '다큐 3일: 어바웃타임', 낭만이 살아있네

신윤재(칼럼니스트) 기자
2025.08.28 09:37

종영된 프로그램 '작은 약속' 하나로 특별편성한 공영방송의 가치

사진=방송 영상 캡처
사진=방송 영상 캡처

미국의 철학자, 시인, 강연자이자 수필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순간의 약속은 누구나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그 약속이 시간을 거듭하면서 굉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어쩌면 ‘낭만’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상황이 우리의 TV에서 재현됐다. 2015년 경북 안동역 앞에서 맺은 한 VJ와 두 여대생의 약속은 10년을 흘러 다시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가치가 편의에 의해 매겨지고, 돌에라도 새긴다는 굳은 약속은 흩날려가기 쉬운 지금의 날에 그 약속의 의미와 결말은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지난 22일 오후 10시에 방송된 KBS2 ‘다큐 3일 특별판-어바웃타임’은 방송사적으로도 지금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2007년 방송을 시작한 ‘다큐 3일’은 2022년 3월13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2015년 8월15일 공개됐던 ‘작은 약속’을 위해 방송사는 특별 편성을 주저하지 않았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당시에 유행하지 않았던 플랫폼들이 그들의 약속을 유지하게 해줬다.

그 발단은 이러했다. 2015년 8월30일 ‘다큐 3일’은 ‘청춘 길을 떠나다’ 편을 방송했다. 당시 ‘다큐 3일’은 2015년 8월12일 오전 7시48분부터 서울 시작해 대전, 강릉을 거쳐 마지막 도착지 안동까지 가며 각 도시에서 여러 세대와 청춘과 낭만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딱 3일, 72시간을 촬영한다는 규칙으로 8월15일 오전 7시48분 촬영을 마칠 때 즈음 약속의 여대생과 만남이 시작됐다.

당시 촬영을 하던 ‘다큐 3일’의 VJ 이지원PD는 마지막 도착지 안동역에서 아침 여행 중인 두 명의 학생을 인터뷰했다. 한 학생이 “10년 뒤에도 똑같은 코스로 돌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고, 함께 있던 친구도 “좋네, 가자!”라며 “날짜도 똑같이 해서 가자”고 말했다. 마침 함께 있던 VJ에게도 “다큐 10년 뒤에도 또 찍으세요”라면서 약속한다. 이들은 10년 후인 2015년 8월15일 오전 7시48분 안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
사진=방송 영상 캡처

시간이 지나 2021년 9월29일 KBS 다큐 유튜브 채널에 해당 방송분이 올라오며 파급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학생이 “날짜가 3년 남짓 남았다”며 PD와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지난 7월부터 다시 이 영상이 각종 숏폼 콘텐츠로 재생산됐고, 지난 7월24일 같은 채널에 2015년 8월30일 방송분이 올라왔다. 열차를 운행하는 코레일과 각종 기업의 후원과 응원 댓글이 달렸고, 이 약속은 ‘국민적 약속’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약속 당일 현장에는 ‘시련’의 흔적도 있었다. 갑자기 아침 난데없는 폭발물 협박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당일 아침 라이브 채팅방에 올라온 폭발물 설치 예고에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지원PD와 ‘다큐 3일’의 라이브 방송 제작진 그리고 이들의 약속을 보기 위해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안동역을 찾은 수십 명의 시민은 속절없이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들의 약속은 장난이라면 굉장히 짓궂은 한 고등학생의 손에 무산된 듯 보였다. 실제 많은 매체들도 이들의 만남이 불발됐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인 22일 공개된 ‘다큐 3일 특별판-어바웃타임’에서는 감격스러운 결말이 공개됐다. 실제 주인공 김유리씨가 그 시간 그 장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지원PD와 김유리씨는 김씨의 요청으로 카메라를 끄고 대화를 나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비록 영상으로 이들의 만남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낭만의 결정체였다. 알고 보니 다른 주인공 안혜연씨 역시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등장하지 않았지만, 약속의 전날인 8월14일 안부를 전했다.

‘다큐 3일 특별판-어바웃타임’은 이렇게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10년의 약속 결정체를 소중히 안고 등장한 주인공들의 만남으로 마무리됐다. 이지원PD의 관조적인 시선은 이들의 만남, 그 가치를 더욱 북돋웠다. 이들의 만남을 감격적으로 만들어줬던 것은 단지 그 소재나 구성, 서사에 있지만은 않았다. 제작진은 2015년 방송분에서 만났던 인디밴드 ‘오빠딸’의 멤버 심지섭씨는 10년 만에 안동역에 다시 모여 ‘살랑살랑’을 연주하며 낭만을 더했다.

사진제공=KBS
사진제공=KBS

결국 이들의 만남은 촬영감독이 SNS에 올렸던 “72시간은 여전히 낭만이었다”는 말처럼, 시련은 있었으나 10년을 충분히 기다릴 가치를 만들어주며 뿌듯하게 끝났다.

이 ‘어바웃타임’의 편성은 자연스럽게 ‘다큐 3일’의 부활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였다. ‘다큐 3일’은 72시간의 기간을 조용히 한 장소에 천착하며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시간에 그 자리를 내줬고, 결국 편성이 끝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5년 8월15일 살짝 맺었던 약속이,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유지되는 모습은 지금 시대의 속도에도 여전히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는 낭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렸다. 이들의 우연한 약속, 그리고 SNS을 통해 이어진 인연 그리고 이들의 약속에 공감했던 사람들, 용기를 냈던 당사자들의 모습은 2025년을 장식할 방송사적 ‘작은 기적’에 그 이름을 올릴 자격을 충분히 보였다.

제작진은 그 약속의 가치를 결코 가볍지 않게 여겨, 등장하는 순간마저도 주인공을 배려해 카메라를 기꺼이 껐으며 이들 만남의 감정을 한 편의 노래로 대신하며 관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드라마나 예능. 자극의 역치를 향해 달리는 콘텐츠 못지않게 다큐멘터리의 가치는 여전하며,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음을 보였다.

낭만, ‘로맨스(ROMANCE)’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늘 이치에 맞게,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경로를 이끌며 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드는 작은 기적의 모습은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안긴다. 이 감정에 공감하는 당신, 아직도 다큐멘터리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가.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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