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메시지와 탄탄한 완성도에 입소문 흥행

누군가의 얼굴이 지워진 자리에서 시대의 죄가 선명해진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은 고도성장 시대가 남긴 그림자와 지워진 얼굴이 던지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름다움과 추함, 성취와 희생이라는 모순이 어떻게 한 가족의 비극으로 응축됐는지 정밀하게 드러낸다.
'얼굴'의 이야기는 40년 만에 발견된 한 여성의 백골에서 시작된다. 시각장애를 지녔지만 도장 예술로 일가를 이룬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박정민),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 그리고 얼굴조차 기억되지 못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신현빈)가 그 중심에 있다.
임영규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새긴다. 그는 성장 시대의 표상이다. 천대받지 않으려 몸부림쳤고 결국엔 성취의 얼굴로 남았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역설적으로 아내의 얼굴을 지워버린 시대와 맞닿아 있다. 그는 장애를 지니고도 굴곡진 시대를 버텼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은 채 살아온 인물이다.

권해효는 노년의 무게와 맹목적 집착을 절제된 몸짓으로 담고, 박정민은 젊은 시절의 치열함을 손끝의 세밀한 동작으로 구현한다. 1인 2역의 경계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 욕망과 상실을 동시에 살아낸다.
정영희는 영화의 가장 큰 공백이자 동시에 모든 서사의 축이다. 얼굴이 끝내 드러나지 않는 그는 존재하지만 지워진 수많은 여성의 상징이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고도성장의 불빛 뒤편에서 가장 먼저 소진된 세대였다. 신현빈은 얼굴 없이도 이 인물에 역동적인 숨결을 새겨 넣는다. 손끝, 어깨, 목소리, 숨의 떨림으로 정영희를 살아 있게 만든다. 관객은 끝내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부재 자체가 시대의 폭력을 선명히 환기한다.
아들 임동환은 아버지를 기록하려다 지워진 어머니를 쫓는 인물로 변화한다. 다큐멘터리 PD 김수진(한지현)과 함께 시작한 탐색은 곧 정영희의 삶과 죽음을 향한 집요한 추적이 된다. 박정민은 젊은 임영규와 다른 결로, 죄책감과 공허를 안은 현대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는 다섯 번의 인터뷰 구조를 택한다. 이모들, 공장 동료들, 재봉사, 사장, 그리고 아버지까지. 각 목소리는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정영희의 삶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완전한 얼굴은 끝내 완성되지 않는다. 연상호 감독은 이 결핍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지워온 얼굴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지금의 성취는 무엇을 대가로 얻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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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 했던 현실에서 비롯된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빛과 그림자를 복원한 세트와 디테일, 얼굴이 끝내 나오지 않는 연출은 미스터리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음악은 인물의 내면을 따라 미묘하게 출렁이며 관객을 마지막까지 흔든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이후 상업적 성취와 장르 확장을 이어왔지만 '얼굴'은 오히려 그의 초창기 문제의식으로 돌아간 작품이다. '사이비'나 '돼지의 왕'처럼 인간의 민낯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태도가 되살아난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남기는 '얼굴'의 여운은 그의 영화 세계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증명한다.
결국 이 영화는 한 가족의 미스터리를 빌려 한국 근현대사의 잔혹한 단면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워온 얼굴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어쩌면 그것은 나의 무관심이 지워버린 얼굴이며, 동시에 우리가 시대의 편견 속에서 함께 외면한 얼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