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망상이 현실을 춤추게 할 때 [뉴트랙 쿨리뷰]

키키, 망상이 현실을 춤추게 할 때 [뉴트랙 쿨리뷰]

한수진 기자
2026.01.27 14:19
키키의 두 번째 미니앨범 'Delulu Pack'은 "올해는 나답게, 조금 더 대담하게"라는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데뷔곡 'I DO ME'의 몽환적 자유로움에서 벗어나 보다 명확한 리듬과 각진 움직임을 특징으로 한다. 타이틀곡 '404 (New Era)'는 망상을 현실을 견디는 동력으로 재해석하며,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의 실제 어린 시절과 현재를 연결하여 망상이 현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걸그룹 키키(KiiiKiii)는 데뷔곡 'I DO ME'(아이 두 미)로 "난 내가 될 거예요"라며 자신으로 존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키키는 다음 문장으로 "올해는 나답게, 조금 더 대담하게"를 꺼내 들며 다시 한번 '나'를 파고든다.

키키가 지난 26일 발매한 두 번째 미니앨범 'Delulu Pack'(델룰루 팩)은 이 문장을 음악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2026년을 여는 키키의 첫 문장은 '성공하겠다'나 '정상에 서겠다'가 아니라 "올해는 나답게, 조금 더 대담하게"라는 태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앨범이 목표나 성취보다 먼저 다루는 것은,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인터넷 밈에서 가져온 앨범명 'Delulu'(delusional(망상적인)에서 파생된 말)는 보통 현실 감각의 결여를 뜻한다. 그러나 키키는 이 단어를 역설로 재해석한다. 망상을 현실과 단절된 허상이 아닌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끌어올린다. 키키에게 망상은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통과하기 위한 자기 연출의 방식이다.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이 지점에서 'Delulu Pack'의 성격은 또렷해진다. 데뷔 미니앨범 'UNCUT GEM'(언컷 젬)이 '우리는 이런 팀이에요'라고 말하는 원석의 자기소개였다면, 'Delulu Pack'은 '그 원석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래요'라는 삶의 설계도에 가깝다. 키키의 새해 소원은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 어디서든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앨범은 그 소원을 유머와 과장, 상상과 태도의 조합으로 풀어낸다.

이 변화는 사운드에서도 분명하게 감지된다. 데뷔곡 'I DO ME'가 풀숲을 뛰노는 듯한 몽환적 질감과 느슨한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Delulu Pack'의 중심에는 보다 또렷한 리듬과 각이 잡힌 움직임이 놓여 있다. 여전히 틀 밖을 말하지만 표현 방식은 한층 선명해졌다. 막연한 자유에서 스스로 선택한 자유로 이동한 셈이다.

타이틀곡 '404 (New Era)'(뉴 에라)는 이 태도를 가장 인상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UK 하우스/개러지 기반의 리듬 위에서 곡은 앞으로 밀고 나가듯 진행되고 보컬은 그 위를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이 곡의 인상은 기술적인 설명보다 감각에 가깝다. 중심에 멈춰 서기보다 시선을 끌며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마치 런웨이를 걷듯 당당하고 여유로운 태도가 사운드 전반에 배어 있다.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키키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404 Not Found'라는 문구는 보통 오류를 뜻하지만, 키키는 이를 '좌표 밖의 자유'로 받아들인다. "나 잡아봐라 Off the Wi-Fi" "찾지 못해도 어디든 있잖아" 같은 가사는 연결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어디에도 묶이지 않았기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 곡이 전하는 해방감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된다.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감각을 한층 또렷하게 만든다. 디바를 꿈꾸던 멤버들의 실제 어린 시절 모습에서 연습실로 이어지는 장면은, 이 이야기가 설정이 아니라 키키의 현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의 상상과 현재를 단절하지 않고 이어 붙여 망상이 공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수록곡들은 이 태도를 일상의 여러 장면으로 확장한다. 인트로 트랙 'Delulu'가 런웨이를 여는 선언처럼 앨범의 문을 열고, 'UNDERDOGS'(언더독스)는 약자라 불리던 존재들의 자신감을 시원하게 밀어붙인다. '멍냥'은 장난기 어린 랩으로 하루의 속도를 끌어올리고, 'Dizzy'(디지)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담담하게 붙잡는다.

키키는 데뷔 때부터 정답 대신 태도를, 진지함 대신 유머를, 장르보다 세계관을 선택해 온 팀이다. 'Delulu Pack'은 그 선택이 가볍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망상처럼 보였던 말들은 이제 방향이 됐고, 상상은 삶의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키키가 다시 꺼내든 '나'는, 이전보다 분명하고 한층 대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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