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자극하며 공감 부르는 메시지에 경쾌한 리듬을 잃지 않는 연출

누군가의 재회를 볼 때면 참 이상한 기분에 붙들린다. 분명 남의 이야기인데, 그 장면 속에서 나의 시간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일요일 밤을 장식하고 있는 MBC 예능 ‘소라와 진경’이 자꾸만 오래전 인연을 다시 만난 기분으로 시청자들을 붙잡고 있다.
‘소라와 진경’은 대한민국 1세대 모델인 이소라와 홍진경이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에 도전하는 관찰 예능이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에서도 런웨이에 서지 않은지가 수십 년이 된 이들이 갑작스레 세계적인 무대에 출사표를 던지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오버랩되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지금도 대단하지만 90년대에는 방송을 호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소라와 홍진경은 당시로서는 충격에 가까운 새로운 감각으로 대한민국 연예계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스타들이다. 같은 업계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은 두 사람은 과감했고, 독특했으며, 자기만의 결이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존재감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아 있다. 쉽게 말해 유난히 튀는 특별한 존재감은 결코 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나란히 재회한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생한 기억 속의 두 사람이 사실 화양연화라는 걸 깨달아서다. 동시에 아득히 먼 기억 속의 내 이야기도 소환되며 시절인연을 곱씹게도 됐다.
그러나 ‘소라와 진경’은 그런 추억팔이, 또는 노스텔지아에만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고 있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으로 진실되게 팬들에게 다가가며 응원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로그램은 두 사람의 파리 패션위크 도전기로서 가볍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의외로 묵직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익숙한 자리에서 뒤로 물러난다는 것, 그러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생경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이소라와 홍진경의 해외 에이전트 입문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알겠지만 중년 이후의 도전은 청춘의 도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젊을 때는 가능성을 믿고 전력질주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실패의 쓰라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용기가 필요하다. 이소라와 홍진경이 파리행을 준비하면서 보이는 망설임과 괜찮은 척 던지는 농담들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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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여전히 대한민국 연예계 정점에 선 사람들인데도 새로운 환경 앞에서는 위축되고 주저하는 모습들이 남 일 같지 않다. 그렇기에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흔들림 속에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시청자들이 두 사람의 도전에 관심을 보이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아흔을 넘기고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진태옥 디자이너의 등장은 이 프로그램에서 잊지 못할 명장면이 됐다. 9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한 기품으로 후배들의 도전을 바라보고 응원하는 그의 표정은 시간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또한, 늦은 나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무심하게 통과한 사람의 내공이었다.

2021년 74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조연상의 영예를 안은 배우 윤여정의 모습도 떠오른다. 결국 지난한 시간을 통과한 이후에도 자기 세계를 잃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자존감이 뚝 떨어졌던 홍진경이 진태옥 디자이너와의 만남 이후 자극을 받고 힘을 얻은 모습은 곧 시청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소라와 진경’은 지나치게 비장해지지 않고, 예능으로서 제 역할을 분명히 한다. 서로 다른 패션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서로 다른 결을 보여주는 두 사람은 미묘한 온도차로 프로그램에 활력을 만들어낸다. 능청스럽게 “뱀(Baam)~”을 외치는 이소라의 엉뚱한 매력은 즐거운 리듬을 일으키고, 홍진경은 전천후 방송인다운 꾸미지 않은 생활감과 순발력으로 편하게 방송을 흘러가게 한다.

파리까지 날아간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직 다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소라와 진경’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롭고 낯선 가능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중년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소라와 홍진경이 만들어내는 담백한 웃음과 더불어 두 사람이 품은 새로운 가능성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건 젊음이 아니라 앞으로 걸어나가는 힘이라는 걸 ‘소라와 진경’이 보여주고 있다.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