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희준이 자비와 잔혹함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열연으로 안방극장에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연출 박준우, 극본 이지현)에서 권력의 단맛과 끝없는 욕망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검사 차시영 역을 맡은 이희준은 성공을 위해 브레이크 없이 타락해 가는 인물의 붕괴 과정을 소름 돋게 그려내고 있다.
지난 18~19일 방송한 9, 10회에서 차시영은 연쇄살인범을 검거했다는 화려한 공로로 축배를 들기 직전, 기존 피해자들과 완벽히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된 혜진의 시신이 발견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치명적인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직감한 그는 고뇌 끝에 끔찍한 사건 은폐를 주도했다.
이후 전개에서 시영의 비틀린 이면은 더욱 맹렬하게 폭발했다. 순영(서지혜)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는 태주(박해수)를 찾아가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태주가 혜진의 행방을 절박하게 요구하며 오히려 진범을 아는 듯한 뉘앙스와 검사지를 무기 삼아 역공을 펼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자신이 태주가 설계한 덫에 걸려들었음을 인지한 찰나, 시영은 다정했던 회유의 가면을 가차 없이 벗어던졌다. 혜진의 시신을 다음 살인 예고일에 맞춰 꺼내겠다는 섬뜩한 도발로 판을 키운 것은 물론, 수하 상범(길은성)을 동원해 태주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어두운 구덩이에 유기하는 잔혹함을 보이며 안방극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이번주 방송에서는 이희준과 박해수가 맞붙으며 뿜어내는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가 압권이었다. 벼랑 끝에 몰려도 진실을 좇는 태주의 처절한 맹목성과, 그런 그를 철저히 짓밟고 통제하려는 시영의 서늘한 오만함이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브라운관을 압도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두 호랑이의 치열한 대립 구도는 '허수아비'가 가진 묵직하고 다크한 장르물의 매력을 배가했다.
이희준은 이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미세한 템포와 톤의 변주만으로 완벽하게 설득해 냈다. 부드럽고 차분하게 깔리는 저음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다가도, 심기가 틀어지는 순간 표정을 차갑게 굳히며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조장했다. 특히 사과를 건네던 얼굴에서 상대를 옥죄는 포식자의 얼굴로 전환되는 순간, 순식간에 식어버린 눈빛과 날 선 압박감은 한순간도 속내를 읽을 수 없는 기괴한 캐릭터를 완성해 냈다.
예측 불허의 전개 속에서 매 순간 새로운 얼굴을 갈아 끼우고 있는 이희준. 끝을 모르는 그의 브레이크 없는 폭주가 앞으로 남은 서사 속에서 또 어떤 핏빛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