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악역 벗고 사랑스러운 말년 병장으로 변신
실제 군 생활 모습 투영…"묵묵히 후임 챙기는 모습 닮아"
"무명 시절은 고난 아닌 즐거운 여행…요즘 연기가 더 재밌어"

배우 이홍내가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통해 낯설고도 반가운 얼굴을 꺼내 보였다. '경이로운 소문'의 지청신을 비롯해 거칠고 서늘한 인물을 주로 맡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허세와 허당기, 따뜻한 속내를 함께 지닌 말년 병장 윤동현으로 활약했다. 음식을 만들 때마다 최악의 맛을 내는 사고(?)를 치면서도 후임을 묵묵히 챙기는 윤동현의 인간적인 매력을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로 살려내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티빙 오리지널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강림소초에 배치된 이등병 강성재(박지훈)가 정체불명의 가디언 시스템을 만난 뒤 취사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실제 1990년생의 서른 중반인 이홍내는 일반 병사 역할을 맡은 배우들 가운데 맏형으로서 현장의 중심을 잡는 동시에, 극 안에서 강성재의 성장을 돕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했다.
"요즘 시청자분들이 보내주시는 사랑 덕분에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작들에서 반항적이고 거친 모습을 자주 보여드려서 윤동현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모에 거리감을 느끼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했거든요. 다행히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 방송을 보고 나니 실제 윤동현이 전역하는 것처럼 인간 이홍내도 이 드라마에서 전역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원하면서도 아쉽고, 떠나는 게 좋으면서도 떠나고 싶지 않은 전역 날 마음 같더라고요."
극 중 윤동현의 변화는 강성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후임의 뛰어난 요리 실력을 견제하고 질투했지만, 강성재가 음식에 쏟는 진심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이홍내는 그 감정의 흐름이 유려하게 이어지도록 조남형 감독, 박지훈과 꾸준히 의견을 나눴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윤동현은 강성재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적대감을 보이지만 강성재가 만든 음식의 맛을 알고, 그 친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요리하는지 지켜보면서 요리에 눈을 뜨고 마음의 문도 열게 되죠. 강성재를 바라보는 윤동현의 마음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독님, 박지훈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장면을 준비했습니다."

윤동현은 이홍내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 캐릭터다. 출세작 '경이로운 소문'에서의 삭발한 모습과 강한 인상 때문에 실제로도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했다는 그는 이번 작품 이후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됐다. 다만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호평에 들뜨기보다 이전과 같은 자세로 연기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경이로운 소문' 직후에는 저와 눈이 마주치면 무서워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경계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데 윤동현을 연기한 뒤에는 '생각보다 안 무섭게 생겼다'거나 '귀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새로운 모습을 좋아해 주신다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들뜨지는 않으려고 해요. 계속 그랬듯 진정성 있고 정성 어린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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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윤동현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캐릭터 안에 자신의 모습이 많이 담겼기 때문이다. 낯을 가리지만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는 장난기가 많고, 서툴더라도 매사에 열심히 임하는 성격도 닮았다. 실제 군 복무 시절에도 앞에서 칭찬하기보다는 조용히 곁을 지키는 츤데레 선임이었다고 돌아봤다.
"제 군 생활할 때 모습이 윤동현에게 많이 투영됐어요. 저는 부족하더라도 뭐든 열심히 하는 병사였고 운동이나 농구, 축구도 열심히 했어요. 조금 츤데레 같은 면도 있어서 앞에서 칭찬은 잘 못 하지만 옆에서 묵묵히 챙기는 편이었고요.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나오는 제 모습도 윤동현에게 가져왔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저와 닮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강성재 역의 박지훈과 호흡은 작품의 웃음과 감동을 이끈 중요한 축이었다. 이홍내는 윤동현의 과장된 반응과 코믹한 행동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 박지훈의 안정적인 연기를 꼽았다. 대본의 뼈대를 지키면서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빈틈을 채운 배우들의 호흡 역시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윤동현이라는 인물이 빛날 수 있었던 건 강성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윤동현의 말과 행동이 일상보다 과장된 부분이 많은데, 강성재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설득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박지훈 배우가 그 균형을 잘 잡아줬고 촬영하면서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닭장에서 함께 달걀을 꺼내는 장면도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찍어서 기억에 남아요. 방송으로 보면서 박지훈 배우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배우로서 연기의 재미를 다시 크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대표작을 만났다는 감사함과 별개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연기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연기는 여전히 어렵고 막막할 때도 있어요. 끝없는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데 요즘은 연기가 정말 재미있어요.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하면서 그 재미를 더 크게 느꼈습니다. 제 주변에도 저보다 훨씬 능숙하게 연기하는 형과 누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도 대표작을 만난 것에 감사하면서 묵묵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요리를 못하는 윤동현과 달리 이홍내는 촬영 전 칼질과 웍 사용법을 익히며 작품에 등장하는 메뉴를 직접 연습했다. 다만 촬영을 마친 뒤 요리가 일상의 취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취생에게는 재료를 준비하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촬영 전에 칼질도 배우고 웍도 다뤄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봤어요. 그런데 촬영이 끝난 뒤 집에서 자주 해 먹지는 않아요. 손이 큰 편이라 혼자 먹을 양보다 많이 만들고, 결국 남기거나 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혼자 먹는 간장계란밥 정도는 자신 있어요. 찌개는 몇 번 시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웃음)."
이홍내는 20대 대부분을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상업영화의 작은 배역으로 보냈다. 흔히 '무명 시절'이라 불리는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고난보다 즐거움이었다. 인터넷에서 오디션을 찾고 영화사에 직접 프로필을 돌리면서 얻은 작은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 시절을 고난과 역경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서울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즐거웠고, 지금도 한강을 건널 때면 설레요. 인터넷으로 오디션에 지원하고 영화사 앞에 프로필을 두고 다녔고, 그렇게 얻은 작은 배역으로 연기하는 게 행복했어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어떻게 연기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장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멜로다. 강한 외모와 이미지 때문에 사랑을 중심에 둔 작품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이홍내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멜로를 정말 해보고 싶어요. 제 외모나 기존 이미지 때문에 멜로 장르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예전에 단막극에서 사랑에 서툴지만 진심이 있는 인물을 맡았는데 그런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저는 인간이 사랑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사랑이 중심이 되는 작품에서도 활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