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복잡해진 이야기 구성 그러나 사라진 원작의 핵심

'맨 끝줄 소년이라는 제목은 묘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맨 끝줄에 앉은 소년은 누구이고, 그 소년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최민식의 첫 넷플릭스 드라마로 관심을 모은 ‘맨 끝줄 소년’은 작문 수업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의 이야기다. 국내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됐고 프랑스 영화로도 만들어진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원작을 긴 호흡의 이야기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첫 소설 이후 두 번째 소설을 쓰지 못하는 교수 허문오(최민식)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작문 실력과 열의 없는 수업 태도에 회의를 느끼던 그는 강의실 맨 끝줄에 앉는 학생 이강(최재욱)의 재능을 알아본다. 허문오의 설득으로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문학 수업을 하기로 한다. 이강은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져오고, 허문오는 점점 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원작자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대표작 ‘맨 끝줄 소년’은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 있었던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수학 교사였던 작가가 시험지에 자기 이야기를 쓴 학생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아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학교와 가정을 무대로 문학과 예술이란 무엇인지, 가족, 중산층, 지식인이란 무엇인지 다양한 층위의 질문을 던지며 관객이 저마다 상상하고 답을 찾게 만드는 작품이다.
‘맨 끝줄 소년’은 프랑스 영화의 거장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2013년에 ‘인 더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긴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고등학교 문학 교사 제르망과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의 아내 쟝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학생 클로드의 작문 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면서 잃었던 활력과 열정을 되찾지만, 점점 과감해지는 클로드의 소설은 두 부부의 삶에 예상치 못한 결말을 가져온다. 파격적인 소재와 극적인 반전을 다뤄온 오종 감독인 만큼 ‘인 더 하우스’에서도 금기와 욕망을 아슬아슬하게 전개하며 원작이 던진 질문들에 도발적이면서 우아한 방식으로 답했다. 원작의 마지막 장면을 다르게 해석한 연출도 탁월했다.

반면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은 여러 면에서 과감한 시도를 감행한다. 먼저 배경을 대학으로 변경하고, 원작에서 교사 부부와 학생 2대 1에 가까웠던 주요 인물 구도도 교수와 학생 1대 1로 바꿔 캐릭터 몰입도를 높였다. 드라마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면 원작에 없는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추가해 이야기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친구 가족을 소재로 한 이강의 소설은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면서 원작 희곡과 영화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띤다. 그 결과 원작보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성격이 훨씬 강해졌다.
드라마의 결말은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허문오와 이강의 관계를 원작보다 깊이 파고든다. 자기에게 없는 재능과 특별한 이야기에 집착한 허문오에게는 무엇이 남는지, 결핍에서 비롯한 줄만 알았던 이강의 실체가 무엇인지 낱낱이 드러난다. 원작을 본 사람도 예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결말을 제시한다. 하지만 주연배우 최민식의 대표작 ‘올드보이’를 연상시키는 결말은 신선한 발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원작에서 벗어나 다른 서사를 제시한 결말은 파격적이지만, 극적 반전과 차별화를 위한 사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맨 끝줄 소년’은 최민식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수아 오종 영화의 교사 캐릭터가 열정과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내성적인 인물에 가까웠다면, 드라마의 허문오는 내면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하는 인물이다. 이강의 부탁으로 범죄라 할 수 있는 일탈을 감행하는 장면부터 최민식의 연기는 원작과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인물을 만들어낸다. 원작 희곡의 주인공 헤르만이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교사에 머무르는 인상이었다면, 최민식이 연기한 허문오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증폭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거듭난다. 마지막 6화에서 최민식이 펼치는 연기는 드라마를 끝까지 붙들어두는 압도적인 자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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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맨 끝줄 소년’은 원작이 허락한 여백의 상상력을 마음껏,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패착을 저지른다. 드라마는 ‘맨 끝줄 소년’이라는 제목과 달리 소년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물론 소년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지만, 대학으로 배경을 옮기면서 원작이 품고 있던 금기의 긴장감도 함께 희석된다. 무엇보다 교수의 서사에 무게를 더하면서 원작이 지녔던 ‘글쓰기에 매혹된 교사와 소년의 위험한 관계’보다 중년 남성의 욕망을 파고드는 작품으로 초점을 옮겨버렸다.

후안 마요르가는 원작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는 즐거움, 실제 삶과 상상 속 삶을 혼동하는 위험, 그리고 상상하는 행위 자체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의 중심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현실을 어떻게 잠식하는지가 놓여 있다. 반면 드라마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시기하며 개입하려는 욕망이 상상력보다 앞선다. 원작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졌지만, 그만큼 원작이 탐구했던 상상 그 자체의 매혹과 위험은 뒤로 밀려났다. 새로운 이야기를 얻은 대신, 원작의 핵심을 잃은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정유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