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직의향서'와 '사직서'

[기자수첩]'사직의향서'와 '사직서'

오상헌 기자
2006.05.23 08:57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리처드 웨커 행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본점 출근을 처음으로 봉쇄한 지난 15일. 이날 외환은행 부점장들이 따로 모여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551명의 부점장들로부터 일괄 '사직의향서'를 제출받았다. 지난 19일 비대위는 결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언론에 배포했다.

그러나 성명서에서는 사직의향서가 아닌 '사직서' 제출로 표현됐고 언론에서는 성명서에 나온대로 사직서로 표현해 기사를 실었다. 웨커행장도 이날 오후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글을 통해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은 은행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강수를 내놨다. 노조와 비대위는 반발했고 은행업계에서도 외환은행 부점장의 사직서 파동이 오는지 촉각을 세웠다.

그러나 비대위가 성명서에 밝힌 사직서는 사직의향서였다. 사직의향서는 글자 그대로 사직의향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사직서로서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었다.

비대위는 노조원이 될 수 없는 외환은행 부점장들이 모여 결성한 비공식조직이다. 외환은행 매각반대의사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직장마저도 포기할 수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는 정공법을 쓰지 않고 사직의향서라는 형식으로 안전한 우회경로를 택한 것이다. 벼랑끝 전술처럼 비쳐졌지만 사실상 아니었던 셈이다.

 

웨커 행장도 부점장 결의 문서가 나중에 사직서가 아닌 사직의향서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웨커 행장은 부점장들을 은행 영업점을 대표하는 CEO로 인식, 경솔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점장의 부적절한 행동은 은행 영업과 고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노조가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중단키로 해 외환은행 갈등은 소강국면을 맞고 있다. '사직서 사건'도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부점장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내부갈등의 골이 더 깊이 패일 뻔했다. 은행 매각과정에서 노사가 대립각을 높이는 명분싸움보다 실리를 존종하는 실용적인 접근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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