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려는 채무자 지원, 79만 신용회복"

"빚 갚으려는 채무자 지원, 79만 신용회복"

대담=정희경 금융부장· 정리=반준환·사진=홍봉진 기자
2009.05.06 09:51

[머투초대석] 홍성표 신용회복위원장

소액금융지원제도 월 신청액 40억 넘어

5억이하 채무자는 프리워크아웃제 이용

도덕적 해이? 사전상담 의무제로 해결을

"제가 신용회복위원회를 방문한 것은 2004년 초로 기억됩니다. 안내책자 표지의 '빚에서 빛으로…'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으나 언제 그런 날이 올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어두운 그늘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기에 15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70만원을 신복위에 입금했고, 조기상환을 위해 70만원을 따로 적금 들고 10만원으로 한달 동안 생활했습니다.

2004년 6월 첫 변제금을 납입했고, 해가 지나면서 급여도 올라 조금 더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 11월 결혼해 조그만 집이지만 제 명의의 아파트도 장만했고, 2007년에는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올해 3월 지인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고 채무상환을 완료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30대를 저는 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보내면서 소중한 가정도 이루게 됐습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꼬리표를 떼고 정상인으로 돌아온 사람이 올해 초 신용회복위원회에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의 사연은 2002년말 신용위기부터 현재까지 구슬땀을 흘려온 신복위 직원들에게도 큰 힘이 됐다. 신복위 직원들은 2002년 10월 출범해 지금까지 281만명 이상의 눈물어린 사연을 듣고 이 가운데 79만명의 신용회복을 도왔다. 홍성표 신복위 위원장을 만나 현안을 들어봤다.

―경제위기로 업무가 늘어났나요.

▶많이 늘어났습니다. 우선 올 1분기 상담은 14만701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9% 급증했습니다. 하루 평균 1634건의 상담이 이뤄진 것입니다. 신용회복 절차를 신청한 사람은 2만4004명이었습니다. 직전 분기 상담이 12만8366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위기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2년 10월 신복위가 출범한 후 지금까지 총 상담건수는 281만807건에 달합니다. 상담 후 신용회복 절차가 시작된 사람은 79만6785명입니다. 거주지역별로 누적통계를 내봤더니 서울과 경기가 전체 신청자의 40.2%로 가장 많았고 부산(9.8%) 인천(7.5%) 경남(6.1%) 등의 순이었습니다.

―누가 주로 문을 두드립니까.

▶저소득층입니다. 신복위 출범 후 올 1분기까지 월소득 100만원 이하 신청자가 전체의 52.2%인 41만5726명입니다. 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경우는 4.1%에 불과합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곤란해지는 건 저소득층이라는 얘기입니다. 부채규모별로도 2000만원 이하가 42.7%로 가장 많습니다. 대부분 조금만 도와줘도 회복이 가능한 이들입니다. 연령별로도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 신청자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30대 비중은 39.2%(31만명), 40대는 30.4%(24만명)입니다. 이 두 연령층을 합하면 무려 70%에 달합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 지원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국민연금 납부액의 절반 이내에서 채무를 일시에 상환토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짧은 기간인데도 모두 6626명이 이용했습니다. 또한 성실한 변제자를 돕기 위해 지난해 6월 금융권의 협조를 받아 '신용회복지원중'이라는 기록을 삭제했습니다. 이 기록으로 인해 취업이나 신용등급에서 불이익을 받는 걸 해소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를 통해 올 3월까지 33만6000여명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30~40대뿐 아니라 20대 청년들까지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많은데, 한순간의 실수로 사회생활을 못해선 안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얼마전 노동부와 협약을 체결해 채무불이행자 등의 재활도 돕고 있습니다.

―소액금융 지원제도는 어떤 내용입니까.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밟는 이들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본인이나 가족의 질병, 사고로 급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금융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해 연 수백%의 고리이자를 물더라도 사채업자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시 빚의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생활안정자금, 운영자금, 고금리사채 차환자금 등을 500만원까지 연 4%에 대출해주고 있습니다. 학자금 금리는 연 2%까지 적용되고 상환기간도 넉넉합니다. 현재 상환율은 98%에 달하지만 대출부실을 막기 위해 별도 신용평가모델을 도입하는 한편 서울보증보험의 신용보험에도 100% 가입합니다.

―소액금융 지원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휴면예금관리재단에서 지난해 120억원을 차입했고, 올해 90억원을 추가 지원받았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도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전광역시와는 지난해 12월 협약을 맺어 10억원을 무상대여받았고 부산시청 등 다른 지자체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뿐 아니라 은행연합회, 금융연구원, 금융연수원 임직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신복위 직원들도 올해 급여의 1%를 기금으로 기부했고, 저도 10%를 내놨습니다. 재원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8월 이후 신청액이 크게 늘었습니다. 월평균 15억~20억원이던 신청액은 올해 3월들어 4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지원건수는 지난해 월평균 370여건에서 올해는 1700건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개인프리워크아웃제도가 시행됐죠.

▶프리워크아웃은 2개 이상 금융회사에 총 채무액이 5억원 이하인 채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입니다. 과도한 부채 탓에 채무불이행자가 되기 전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입니다. 실업, 휴업, 폐업, 재난, 소득감소 등으로 사전채무조정 없이는 정상적인 채무상환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대출상환을 연장해줍니다.

연체이자 감면과 함께 무담보대출은 최장 10년까지, 담보대출은 20년까지 상환이 연장됩니다. 만기일시 상환은 원리금 분할균등 상환으로 조건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소득이 감소했다면 최장 1년까지 상환이 유예되고, 이 기간 금리는 연 3%로 낮아집니다.

채무재조정 금리인하폭은 약정이자율의 70%(연 5% 한도)까지 가능합니다. 신청자격은 1곳이라도 금융기관 연체가 30일 초과~90일 미만이면 가능합니다. 다만 신규발생 채무가 총채무액의 30% 이하여야 하고, 부채상환비율은 30% 이상이어야 합니다. 보유자산(부동산 등)이 6억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개인회생법, 파산제도 등 신용지원이 늘어나면서 채무자들의 도덕적해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일부 채무자의 도덕적해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파산과 개인회생의 경우 채무불이행자들에게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고들 합니다. 신용회복제도는 신청을 하더라도 채무의 상당액을 갚아야 하는 반면 파산제도는 상환의무가 크게 줄어듭니다.

물론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일례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신용회복 지원절차를 밟는 이들의 유지율이 50%에 불과하나 한국 신용회복위원회의 경우 70%를 웃돕니다. 또한 신청인 중 8~10%는 채무를 모두 갚아 정상화됐습니다.

다만 탈락자 30% 가운데 일부는 개인채무회생, 파산 등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무적인 시각에서 보면 제도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파산신청 전에 신복위의 상담과 평가를 거치는 '사전상담 의무화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무를 면책받아야만 하는 사람인지 1차 진료를 해보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이런 제도를 도입했는데 성과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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