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은행 어디로 가나] <하-1>우리금융 민영화 어디로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우선순위'부터 명확히 하라."
우리금융민영화 재추진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금융당국에 내놓은 한결같은 조언이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3대 원칙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조기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 시장 상황에서 3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정부가 지난 해 우리금융 매각 입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시장 여건상 '조기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민영화가 다시 추진되는 올해도 이런 '모순적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우리금융 지분을 팔아 공적자금을 최대한 많이 거둬들이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시장 여건과 금융지주회사 소유·지배 규제 등을 감안하면 막대한 '웃돈'을 얹어주고 우리금융 지배 지분을 사갈 수 있는 국내외 투자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권과 학계에선 정부가 매각 틀을 새롭게 짜면서 우리금융 '조기 민영화'와 '금융산업 발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민영화 3가지 원칙을 동시에 달성하긴 어렵다"며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보단 조기 민영화를 통해 우리금융에 경영 자율성을 주고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기 민영화가 공적자금 회수율 높인다"=정부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원칙을 버리지 못하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 13조(최소비용의 원칙)엔 '공적자금의 투입비용이 최소화되고 그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여 공적자금을 지원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달 15일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는 법률에 의해 주어진 의무"라고 강조한 대로 '법적 의무'인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러나 정부가 '최소비용의 원칙'과 '손실최소화의 원칙'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공자법 관련 조항은 원래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라는 의미"라며 "우리나라에선 단지 예금보험공사 보유지분을 매각할 때 공적자금 회수액을 최대화하라는 의미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도 "공적자금은 국민세금이지만 투입 당시 금융산업과 한국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는 데 사용됐으므로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며 "정부가 '본전' 생각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스스로가 국민 혈세를 '적기에, 최대한' 많이 회수하지 못한 책임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과 주가 추가 상승을 기대하며 여러 차례 '실기'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주가가 고점(2만5800원)이었던 지난 2007년 2월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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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당시 우리금융 지분을 매각했다고 가정하면 공적자금 총 회수액은 19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금융비용(예보채 이자 등)을 빼더라도 16조원의 국민 혈세 회수가 가능했다. 우리금융에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 12조8000억원(회수액 5조3000억원)을 훌쩍 웃도는 규모다.
그러나 작년 말 우리금융 시가(주당 1만5500원)를 기준으로 정부가 보유한 지분(56.97%) 가치는 7조1200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100% 회수하려면 7조5000억원을 더 거둬들여야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없인 원금도 못 건지는 상황까지 민영화를 미뤄온 셈이다.
민영화가 늦춰질수록 공적자금 원리금이 불어나 회수율이 되레 감소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예보채 조달 비용 등 금융비용만 매년 3000억원 이상 발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누적 금융비용이 지금까지 5조원 가까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정부가 우리금융을 조기 민영화하는 것이 공적자금을 최대한 많이 회수하고 회수율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바람직한 지배구조' 만들어야= 정부가 '가격'과 함께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지배구조'다. 가격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와 관련 있다면 지배구조는 금융산업 발전과 깊이 연관돼 있다. 민영화 후 국내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금융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가져가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취임 직후 "우리금융의 미래가 잘 보장되도록 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원칙과 함께 금융산업 발전 측면을 두루 고려해 민영화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정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정부는 우리금융 지배 지분(약 28.5%) 이상을 팔아 민간 영역에서 '주인'을 찾아주는 게 최선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사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이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 상황인 데다 금융지주사의 소유 및 지배를 둘러싼 여러 법률적 규제가 널려 있다는 게 문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국내외 금융지주사가 우리금융을 인수하려면 12조원 이상을 들여 지분 100%를 모두 인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외 은행이나 비금융주력자인 사모펀드(PEF) 등의 경우 원천적으로 우리금융 지배지분 인수가 불가능하다. 산업자본은 '금산분리 원칙'에 막혀 있다.
우리금융 지분 30% 이상을 취득하고 경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금융주력자이자 일정 요건을 갖춘 사모펀드(PEF)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PEF에 우리금융 경영권 지분을 넘기는 건 정부로선 선택하기 힘든 답안지다.
KB금융과 하나금융 등이 거론했던 '합병' 방식의 경우에도 가능성을 떠나 합병회사의 지분 구조가 분산소유 형태라는 점에서 '주인 찾아주기'와는 거리가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합병 방식은 은행 대형화가 화두가 됐을 때 금융산업 발전 측면에서 나온 얘기지만 지금 시점에서 정부 주도의 합병은 여러 잡음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이 '과점적 대주주' 그룹을 대상으로 정부 지분을 분산 매각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민영화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런 이유때문이다. 우리금융 임직원, 연기금, 국내 대기업, 국내외 기관투자자 등이 대주주 그룹을 구성해 일종의 '한국형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권에선 지분이 완전 분산된 상태에서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전횡하는 '대리인 문제'나 지분율이 많지 않은 1대주주가 이사회를 독점하는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회사처럼 책임과 권한이 조화된 효율적이고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립해 소유지배구조와 민영화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유연한 입찰 구조를 선택해 우리금융 민영화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민영화) 시기보다 방법론이 더 중요하다"며 "방법론만 정해지면 시기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금융당국과 시장 안팎에선 △매각 입찰 기준(유효경쟁 기준, 경영권 프리미엄 등) 완화 후 재입찰 △시간외 대량매매(블록세일) △ 희망수량 경쟁입찰 △국민주 방식 매각 △수의계약 등을 실현 가능한 민영화 방식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