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같아도 일 안하겠습니다" 저축은행 청문회가 열리던 날, 한 금융권 고위인사는 고개를 저었다. 정책적 판단 하나하나가 나중에 추궁을 당한다면 누가 책임지고 일을 하겠느냐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제수장들은 20일부터 진행된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다. 시작부터 "보고서에 사과의 뜻이 제대로 안 담겼다"며 질타가 쏟아졌다.
여야의원들은 정치인답게 감정적 언사들을 즐겨 사용했다. "'서민의 한'을 책임지라"는 식이다. 피해를 본 금융 소비자들은 물론 억울하다. 하지만 사실 냉정히 따지면 높은 금리를 주는 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이용자의 몫이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에 돈 맡기라고 한 적은 없다.
심지어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금융사기방조원이다. 감독하라고 했지 누가 금융사기를 도우라고 했나"라는 비난도 나왔다. 대중을 의식한 청문회라고 하지만 너무하다. 부실사태를 처리하느라 밤잠 못잔 금융당국 직원들과 관료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이날 "저축은행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치들이 무리한 외형확대의 계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조치들이 이날까지 우리 금융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분명히 했다.
왜 위기방지를 제때 하지 못했냐고 묻지만 이 질문도 국회에 되물어야 한다. 우량저축은행 대출한도 확대와 함께 추진했던 일종의 부작용 방지법을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부실을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사정을 너무 안이하게 본 측면이 있다.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된 상태에서 저축은행 문제를 건드렸다가는 순식간에 건설사로, 제1금융권으로 위기가 번져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정말 이러지 말자고 얘기 좀 해 주세요" 한 금융당국자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치적 입장에서 각을 세우고 10년 전 정책 결정 사항까지 하나하나 들먹이며 따지는 게 어떤 생산적 의미가 있냐는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