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금융감독원에서 저축은행 검사를 담당한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저축은행 사태 탓에 연일 강행군을 했다. 출장도 숱하게 다녔다.
그 사이 적잖은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그가 검사한 곳도 포함됐다. 저축은행의 대주주는 구속도 됐다. 그가 자료를 뒤지고 파헤쳐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 비업무용 부동산을 몰래 팔아치운 뒤 등기부등본을 위조한 사실도 밝혀냈다. 그만큼 열심히 했다. 일부 직원의 비리로 얼룩진 금감원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픈 의지도 컸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뒤에도 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검사, 지방 출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 연휴 직전이었다.
며칠간의 지방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등기우편이 한 통 와 있었다. 두툼한 서류 뭉치가 그 안에서 나왔다. 첫 페이지를 본 그는 순간 당황했다. '새빨간' 글씨로 적힌 짧은 편지가 적잖은 위압감을 준 탓이다. 발신자는 구속된 저축은행 대주주였다. 서류 뭉치는 70페이지 분량의 진술조사였다. 그가 저축은행 대주주를 고발하며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었다.
편지를 찬찬히 읽어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250자 남짓에 불과했고 거친 표현은 없었지만 행간에 담긴 '협박'이 불쾌감을 더한 때문이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노후생활을 하시는 데 이 자료가 도움이 되실 줄 압니다" "좁은 공간에 보관하고 있기 어려워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잘 간직하시고 참고하세요" 등의 표현이 그랬다. 가족을 언급한 대목에선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나마 배우자가, 가족이 우편물을 먼저 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무서운' 추석선물을 받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욕같은 표현이 없기에 공갈·협박으로 고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오죽하면 그랬을까'하고 그냥 묻기로 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주소를 알고 있는데…' 등 여러 잡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이게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담당자를 둘러싼 유언비어가 나돈다. 가족들은 심적 고통을 겪는다. 누군가의 잘못을 찾고 제재하는 이들의 숙명이기엔 너무 가혹하다. 때론 과하다고 비판을 받는 감독당국이지만 이런 고충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곳도 감독당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