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민금융 산증인' 김병기 금감원 '乙' 팀장의 10년
2002년5월 봄비 내리는 어느 날, 20대 초반 앳된 자매가 금융감독원을 찾아왔다. 자매는 사연을 털어놨다. 동생이 다이어트 제품을 구매하려다 어린 마음에 사채를 썼다. 얼마 안 되는 빚이었지만 이자가 붙기 시작하자 무섭게 불어났다. 언니까지 카드 돌려막기에 나섰지만 감당이 안됐다. 빚은 어느새 수천만원으로 늘었다.
40여분 상담 끝에 자매는 펑펑 울었다. 대부업법(2002년10월 제정)도 없던 시절, 정부 부처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자매는 울먹이며 "우리 얘기를 들어준 데가 여기 밖에 없다"고 말했다.
10여년이 흘렀어도 김병기 금감원 서민금융지원팀장(사진)은 '자매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김 팀장은 "빛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김 팀장은 2002년2월 한국은행에서 당시 금감원 비제도금융조사팀으로 왔다. 서민금융 업무라고 해봐야 팀장(조성목 현 저축은행검사국장)과 팀원 4명이 고군분투할 때다.
사실 서민금융 업무는 금감원에서 예나 지금이나 인기 분야는 아니다.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채업자, 대출사기범 등 눈앞의 불법을 상대하고 피해자를 돕는 위치다. 때로는 잘못이 없어도 욕을 먹기 일쑤다. 김 팀장은 "'을'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지만 숱한 소시민들의 눈물이 김 팀장을 붙잡았다. 지방근무 기간을 빼면 거의 줄곧 서민금융을 맡았다. 한 우물을 파다보니 크고 작은 자랑거리도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금융 이용실태 조사도 김 팀장이 실시했다. 서민 대출 중개기관인 한국이지론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했다. 저신용자를 위한 은행권 대출 '희망홀씨'(새희망홀씨의 전신)도 김 팀장이 작명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작업은 없었다. 한국이지론을 설립할 때는 냉소적인 금융회사들을 설득하느라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돌며 설명회를 열었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환승론을 실시하자 대부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김 팀장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보람 있다"며 "변화는 한순간 이뤄지지 않고 하루하루 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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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 팀장은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 '1332'(국번없이)의 운영을 담당한다. 김 팀장은 "신고를 접수해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각종 지원방안을 연결해준다"며 "이밖에도 유사수신 적발, 불법대출중개수수료 반환, 불법사금융 피해자 구제 업무 등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1개 팀에 불과하던 조직도 실과 국을 갖춘 선임국장급(양현근 서민금융지원 선임국장) 조직으로 커져 체계적인 서민금융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김 팀장은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불법사금융 피해예방 홍보를 위해 대학생 60명으로 구성된 '희망금융네트워크'도 28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김 팀장은 "젊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을 중심으로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금융지식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목표를 물었다. 김 팀장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들의 깜깜한 현실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게 소명"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