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씨티은행 본사 1층에 또다시 천막이 등장했다. 노조가 마련한 농성장이다. 노조는 27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의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행장 선임 후 첫 출근을 한 28일, 박 행장은 통과의례처럼 출근저지를 당했다. 하지만 노조와의 대화 의지를 피력한 후 사무실로 올라갔다.
노조도 고민이다. 박 행장의 선임에는 반대하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다. 기자가 28일 오전 방문한 천막 농성장에 그 흔한 '투쟁가'도 흘러나오지 않은 이유로 보인다. 이는 한국씨티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권 전반적으로 이른바 '선수급' 최고경영자(CEO)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근 만난 금융사의 한 임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어릴 때 6~7명이 한꺼번에 달리기를 하는데, 항상 달리기를 잘하는 애들은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 '선수'들이 빠지면 달리기를 못하는 애들도 상을 받게 돼 있어요. 요즘 금융권이 그렇습니다". 이 임원이 언급한 선수는 전직 금융권 CEO들로서, 경영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들이다.
금융권의 선수급 CEO가 줄어든 것은 국내 금융사의 고질적인 한계와 맞물린다. 금융사 CEO 인사는 항상 과열 양상을 보인다. 내부 파벌 문제가 가장 컸다. 우스갯소리로 주요 금융사에는 여당과 야당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파벌이 집권하면 다른 파벌은 짐을 싸는 구조였다. 최근 몇년간 주요 금융그룹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이 좋은 예다.
최근 마무리된 KB금융의 회장 경선은 이러한 한계를 여실 없이 보여줬다. KB금융 회장 후보 9명이 공개된 직후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이 중 한번이라도 KB금융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내부로 분류됐다. 하지만 직장생활 대부분을 KB금융에서 보낸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완벽한 내부출신 중 경영능력이 입증된 이들은 이미 짐을 싸서 KB금융을 떠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권 CEO의 근속연수도 선진국과 비교해 월등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짧은 근속연수는 경영의 연속성에서 마이너스 요인이다. CEO들이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이유다. 오래 전부터 외친 '금융강국코리아'라는 구호가 허망하게 들린다. 다시 달리기 이야기를 해보자. 달리기 선수들이 빠지면 누군가는 상을 받겠지만, 성적은 하향 평준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후임자들이 '선수'로 변모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