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집값 '레드라인 넘어야' 잡는다(下)

이재명 대통령이 "특이한 사금융"이라며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 전세대출에 대해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수술에 돌입한다. 전세대출 보증으로 풀린 전세대출이 전셋값을 올리고, 전셋값이 다시 매매가격을 올리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아예 "부동산 버블 중에 하나"고 비판했다. 다만 전세의 월세화에 따른 주거 안정 대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 달 내놓을 부동산 종합대책에는 전세대출 규제가 담길 전망이다. 우선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보증을 금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는 본인 명의 주택 1채를 임대한 뒤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이를 레버리지로 간주해 대출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추가로 고가 주택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 제한도 검토한다. SGI서울보증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보증금 10억원 이상 고가 전세에 공급된 전세대출 보증 잔액은 2조948억원에 달했다. 특히 고가 전세의 건당 평균 보증액 3억2600만원으로 전체 주택 평균보다 약 2배 많아, 정책보증이 고가 전세의 레버리지를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수도권 1주택자 전세대출 이자 상환분에만 적용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강화될 전망이다. 무주택자라도 고액 전세대출일 경우 이자 상환분 혹은 원금의 일부가 DSR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70% 이하로 낮추는 방안도 거론된다.
박천규 국토연구원 주택·부동산연구본부장은 "전세가 정말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이견이 많다"라며 "전세대출이 유동성을 늘렸고 집값을 부양하면서 최종적인 수혜자는 결국 집주인이 돼왔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셋값과 매매가격이 상호 영향을 주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주택시장 변동성 확대의 사회적 비용과 향후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셋값이 1% 상승할 경우 매매가격은 0.655%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전세자금대출이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을 공급해 대출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도 전세대출이 집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현 정부는 전세가 부동산 버블과 관련해 부동산 버블의 원인 중 하나로 판단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전세는 특이하게 대한민국에만 있는 일종의 사금융인데 지금 사라져가는 추세는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전세대출을 많이 해준 게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부연 설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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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현재 전세가 다수 서민의 주거 수단으로 활용되는 만큼 주거안정 대책이 함께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면 월세가 오르면서 주거비 부담이 크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월세 소득공제의 소득기준이나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라며 "동시에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월세 바우처 등 정부의 지원도 일부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월세 증액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때문에 기업형임대사업의 활성화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임대차의 공공부문 공급 비중이 8%에 그치는데,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 4년간 부동산 대책이 힘을 발휘하려면 시장의 기대 수익률을 확 꺾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대출규제를 통한 수요억제가 '시간벌기용'이라면 주택공급 확대와 부동산 세제 정상화가 근본 대책이다. 주식 매각 대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초입 단계에서 '레드라인'을 뛰어넘는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23일 관련 업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인 9·7 대책과 1·29 대책은 집값을 잡기는 커녕 "공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시장의 신뢰감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9800가구 공급을 예고한 과천 지역의 경우 경마공원 이전과 교통 인프라 부족 우려 속에 지자체와 정부간의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용산(1만3500만가구)도 서울시와 용산구, 주민들의 반발 속에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방선거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과 중앙정부간의 입장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서울 도심내 주택공급 부지로 거론돼 왔던 태릉골프장(6800가구)도 환경, 문화재 보호 등을 이유로 장기 표류 중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금까지 내놓은 공급대책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는 커녕 불신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했다"며 "공급이 당장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발표한 과천이나 용산, 태릉 등에서 공급이 진행될 수 있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공급을 위한 대출 지원도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도록 이주비 대출 한도를 풀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착공 후 공사가 지연된 사업장에는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보증을 확대하는 방향도 테이블에 올렸다. 다만 도심내 공급확대를 위해선 용적률이나 인허가 규제 등에서 예상치 못한 획기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부동산 세제 개편이 종합대책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화한 부동산 세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폭 완화돼 현 정부로 이어졌다. 종합부동산세의 공정시장가율은 최고 95%에서 60%로 낮아졌고 최고세율도 6%에서 5%로 완화됐다. 다주택자 세부담 상한은 300%였다가 150%로 반토막 났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미뤄왔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만 이재명 정부에서 지난 5월 시행 중이다.
자산가치 상승, 소득세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부동산 세제 강화는 피할수 없는 수순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표현한 대로 '정상화' 과정이라는 해석이다. 보유세 부담 강화는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출 수 있는 수단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신한프리미어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급등기 보유세 강화 규제까지 단기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되면서 세부담이 급격하게 불었고 조세 저항감도 커졌다"며 "부동산 세제의 정상화는 필요하지만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어가면서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정책이 유지될 것이란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종합 대책이 '무늬'에만 그치면 이재명 정부의 남은 4년이 문재인 정부의 닮을 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대출규제의 경우 남은 카드가 많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LTV(담보인정비율) 규제를 또 건드린다면 사실상 이 정부가 더이상 쓸 카드가 없다는 선언으로 비춰질 것"이라며 "공급과 세제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정책의 목표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란 비판도 나온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나 용산 등 특정 지역으로의 투기적 수요 차단이 일차적인 목표인지, 전월세 중심 서민의 주거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재명 정부의 경우 사실상 전자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부터 자신의 X를 통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메시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정상의 정상화, 부동산 투기 억제 실패할 것 같나요"라며 "부동산 정상화는 5천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고 더 중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지난 2월에는 "주거용이 아닌 투자, 투기용 다주택 취득에 금융혜택까지 주는 건 문제가 있다", "사회악은 다주택자들이 아니라 다주택이 돈 되게 만든 정치인들"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규제의 대상은 다주택자에 이어 비거주 1주택자로 넓어졌다. "살지도 않는 투자, 투기용 주택 소유자들의 특혜를 회수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임대사업자 중심의 다주택의 기존 대출 만기 연장이 전격 금지됐으며 다음달에는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보증 규제도 예고된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까지 건드린 정부는 역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행보로 볼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사실상 투기적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혔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강남3구로 대표되는 부동산 불패 지역의 투기적 수요를 막겠다는 것인지, 전월세 중심의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인이 명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혼선이 빚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남3구의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1차적이 목표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은 매매와 전세, 월세 등 3가지 거주 형태별로 강남3구 및 용산 등 '상급지'와 강북 및 그외 수도권 등 지역별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같은 6가지 카테고리별로 세제, 공급, 대출규제가 다양한 조합으로 나올 수 있수 있다. 매매가격 위주의 상급지를 타겟으로 하는 정책이라면 '투기적 수요 억제' 방향의 정책이 우선 순위가 돌 수 있다. 반면 강북 및 그외 수도권 지역의 전월세 대책이라면 주거 안정에 방점을 둔 정책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전세제도 구조 개편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전세제도가 사라지면 월세화가 가속화 된다. 전세 낀 매매인 갭투자 근절에 따른 매매가격은 잡힐지 몰라도 전세제도 소멸에 따른 서민 주거안정에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벌어질 때 결국 부동산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한다는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