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5월께 완성했지만 발표 지연
거래소·수탁업체 물밑 협상만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이 안갯속에 갇히면서 은행권에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법인 가상자산 투자 허용이 '1거래소 복수계좌' 논의와 맞물려 있어 은행권에선 속도를 내주길 바라지만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탓에 논의 자체가 더딘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실물 계좌가 트여있지 않은 은행들은 거래소와 관계유지 차원의 미팅을 이어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법인 가상자산 투자 로드맵 논의 TF는 지난 5월 말 이후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
해당 TF는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법인 투자 관련 논의를 위해 마련한 협의체로 금융위, 금융감독원, DAXA(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 상장사협의회, 가상자산거래소가 참여하고 있다. TF가 5월 말 이후 회의를 소집하지 않는 것은 거래 허용 한도 및 내부통제 등을 다룬 가이드라인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TF 관계자는 "5월말에 가이드라인을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내부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위한 중장기로드맵을 통해 비영리법인을 시작으로 상장사, 전문투자 법인에 대해 단계적으로 가상자산 거래를 열어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비영리법인·거래소에 한해 보유한 가상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그해 하반기에 나오기로 한 상장사의 가상자산 거래 관련 가이드라인은 발표되지 않았다.
당국이 원래 약속한 시점에서 1년이 넘었지만 상장사와 전문투자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은 사실상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이미 내용이 확정된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건 가상자산 발행 유통 시장 등 디지털자산 생태계 전반을 총괄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등 주요 쟁점에 관해 정부와 입법기관 간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논의가 공회전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후반기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은 10건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인투자와 기본법은 별개 사안이지만 순서상 기본법을 먼저 만들고 가이드라인을 내놓는게 순서상 적합하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서 가이드라인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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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라인 공백이 길어지면서 은행권 움직임도 소극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나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물계좌를 개설해본 경험이 없는 은행들은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를 계기로 1거래소 복수계좌 허용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1거래소당 1개 은행이 실물계좌를 지원하고 있는데 사실상 법적 근거가 없는 그림자 규제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별도로 규제 완화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과 가상자산업계에선 상장사, 전문투자법인 등 기관들이 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기존에 없는 신규자금이 들어오다보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연결기관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장기적으론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수단으로서도 언급된다.
실제로 최근 A 원화마켓 거래소는 하나·NH농협은행, iM뱅크 등과 미팅을 차례로 진행했다. 이 은행들은 모두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물계좌 지원서비스를 하지 않는 은행들이다. 해당 거래소 관계자는 "관계성 유지를 위해 비정기적 소통을 했을 뿐"이라며 "특정 안건을 다루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재 은행이 법인투자 시장이 열리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은 그나마 수탁업무 정도다. 수탁은 상장사 등 기관들이 보유한 코인을 보관하는 용도인데, 결국 자금세탁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은행들이 수탁업무를 같이 맡아야할 것이란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5대 금융지주는 모두 가상자산 수탁사 지분을 보유 중인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당장 은행에 수탁 업무를 허용해야 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라 일단은 제휴를 맺어두고 있다"며 "법적으로 은행의 업무범위가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지만 직접 수탁, 위탁 수탁 등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규제가 정해진게 없다보니 잠정적으로 신뢰 관계만 구축해두자는 목표이며 대부분 은행이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