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학 전공자 빠진 '병특'..벤처창업계 '멘붕'

[기자수첩]대학 전공자 빠진 '병특'..벤처창업계 '멘붕'

김하늬 기자
2013.12.30 08:21

올해로 설립 3년째인 IT 벤처 A사에는 컴퓨터공학과 1, 2학년 학생 6명이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 선배이자, A사 대표의 일손을 거들기 위해 처음 일을 시작했지만, 군복무를 대체 할 산업기능요원에 지원하기 위한 이유가 컸다. 특히 병역지정업체가 IT기업에서 인턴을 한 경력이 있는 학생들을 선호한다는 점은 더더욱 매력으로 다가왔다.

A사는 병역지정업체는 아니지만 이런 학생들의 수요 덕분에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서 공부한 우수 IT인력들을 인턴으로 채용할 수 있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라 고급 인력을 직접 채용하긴 어렵지만 '징검다리'처럼 이 회사를 거쳐서 산업기능요원이 된 공대생만 3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젠 길이 막혔다. 병무청이 내년 현역 산업기능요원 인원 4000명 중 IT 기업 등을 포함한 5000여 곳에 배정되는 3530명 전원을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생으로 뽑은 까닭이다. 대학생들도 '멘붕'에 빠졌고 신생 IT벤처업계도 '멘붕'에 빠졌다.

A사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형 게임회사를 비롯해 IT솔루션, SNS플랫폼, 애플리케이션 기획회사 등 국내 대부분의 벤처회사들이 산업기능요원을 배정 받지 못하면 당장 일을 함께 못하는 직원에 회사마다 서너 명 씩 있다고 호소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공백이 생기는 것도 문제고 대체 인력을 찾는 것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빅데이터 관련 IT솔루션을 개발하는 B사의 한 엔지니어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고졸 학생을 우대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자는 정책 취지는 공감하지만 갑자기 100% 고졸 직원으로 산업기능요원을 대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는 "나도 5년 전 IT기업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을 하면서 창업의 꿈을 품을 수 있었다"며 "국내 벤처 창업 생태계는 대학생의 산업기능요원 시스템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대구, 부산, 수원 등 지방 중소 IT업계의 '멘붕'은 서울보다 더 크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신생' 회사에 '지방'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고급 인력을 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공립대 내 벤처창업센터에 입주한 C사 대표는 "함께 일해 온 학생들과 더 일하기 위해 내년에는 병역지정업체 신청을 할 계획이었는데 의미가 없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인력 미스매칭을 해소한다며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잘 시행되던 제도를 업계의 목소리와 어긋나게 수정해버린 꼴이 됐다. 정부가 특성화고등학교 지원, 고졸 취업 증대라는 2마리 토끼를 병역특례로 손쉽게 잡아보려 했던 '과욕'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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