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A 사장의 中企 월급쟁이 20년

[광화문]A 사장의 中企 월급쟁이 20년

송정렬 부장
2015.05.22 06:00

#얼마 전 매출 1조원대 중견기업의 A 사장과 저녁을 함께 했다. 국내 최고 학부를 졸업한 A 사장은 30대 초반 당시 이름없는 중소기업이었던 현재의 직장을 선택했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학벌이 밥먹여주는 우리 사회에서 그의 선택은 파격적이고, 남 달랐다.

기업 규모가 작다보니 그는 어린 나이에도 팀장으로 신사업을 발굴하는 등 회사의 굵직한 일들을 챙겨야했다. 그렇게 죽을 동 살 동 20여 년을 쉼 없이 달렸다. 그사이 그는 머리 희끗한 50대 사장이 됐고, 회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궁금했다. 젊은 시절 법조계나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중소기업의 월급쟁이라는 자신의 모습에 혹여 열패감에 시달리지는 않았는지. 그는 말했다. “대리, 과장 시절부터 생각의 방향이 달랐던 것 같다. 친구들은 주로 ‘회사 다니기 힘들다’ ‘회사 분위기가 어떻다’ 등을 얘기했지만, 사실 저는 나, 우리 가족, 팀원들, 팀원들의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이번 일이나 프로젝트를 잘 해낼까하는 그런 고민에 빠져 지냈다.”

#며칠 전 아침 회의시간에 B그룹 계열사 사장들의 자녀들이 B그룹 신입사원 공채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녀들이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 입사시험에 낙방했다는 사실에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구나’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실제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들어 기존의 전형적인 채용방식을 탈피, ‘스펙초월전형’ 등 다양한 채용방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부모와 형제자매의 학력과 직장까지 낱낱이 적어야했던 입사지원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 성별, 최종졸업연도 정도만 간단히 적으면 된다. 아예 학력란을 없앤 곳도 있다. 적어도 입사지원서로는 아버지가 대기업 사장인지, 집에서 놀고 계신지를 알 수 없다.

학벌 등 획일적인 채용 잣대를 벗어나려는 이런 변화와 노력들은 매우 긍정적이다. 물론 스펙초월전형을 통해 최종 입사에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명문대 출신의 비중이 높다는 씁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청년 실업자수가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4월 청년(15~29세)실업률은 10.2%를 기록했다. 1999년 6월 이후 최고치다.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등 사실상의 실업자를 감안한 체감실업률은 11.3%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극심한 취업난의 반대편에선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인재에 목말라 있는 중소기업 경영자들 만큼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일자리가 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이들에게도 못내 아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자녀들을 보면 십중팔구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외국유학은 기본이고, 졸업 이후에는 알만한 컨설팅회사나 대기업을 다니는 것이 필수코스다.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쌓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녀들이 대부분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먼저 중소기업에 취업해 ‘바닥부터 경험해 보라’고 권해야하지 않을까. 그러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젊은이들에게 중소기업에 도전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게 '노블리스 오블리지'가 아니다.

그래야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인식전환이 가능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도전정신을 갖고 중소기업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리고 A 사장 같은 성공사례들이 많아질 확률이 높아진다.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뛰었던 20여년. A 사장은 그 시간에 대해 “'내가 마지막까지 남는다'라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능력에 비해 참 행운이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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