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北서 수혜 첫 교두보 역할…경협시대 앞두고 커지는 뱃고동

6·25 발발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물자교류가 이뤄진 것은 1984년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북한이 우리 측에 무상원조를 했다. 연이은 집중호우로 수백 명의 사상자와 35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남한에 당시 김일성 주석의 “도와주겠다”는 빈말을 전두환 대통령이 덥석 받으면서 이뤄졌다.
북한 적십자사의 수혜물자는 3개 통로로 유입됐는데 그중 3만5000톤의 시멘트가 북측 선박을 통해 강원 동해시 ‘북평항’으로 들어왔다. 남북경협의 첫 교두보 역할을 한 북평항은 이후 ‘동해항’으로 이름이 교체됐지만 여전히 이름을 병기한다.
지난 1일 찾은 북평항은 일반인의 진입을 상당히 경계했다. 검은색 제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보안담당자가 일일이 사전 제출된 명단과 신분증을 대조했다. 신분확인이 이뤄진 뒤엔 바다 쪽 촬영을 금지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인공으로 조성된 만(灣)을 사이로 해군기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1급 보안시설인 까닭이다.
기자를 태운 차량이 부두를 따라 한참을 달렸음에도 좀처럼 바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형 시멘트기업 관계사들의 하역장과 창고들이 연안을 따라 시야를 방해했다. 머리 위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벨트 시설물이 차량을 따라오고 있었다. 국내 최대규모 시멘트공장인 쌍용양회 동해공장에서 만들어진 ‘클링커’(반제품시멘트)를 8.4㎞ 떨어진 이곳까지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다.

쌍용양회 북평공장에 들어서자 부두에 접안된 1만톤급 시멘트 벌크선과 그 위로 대형 선적기가 위용을 뽐냈다. 이곳엔 3개 선적기가 있어 동시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선박 사이로 맞은편 부두에 정박한 해군 함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쌍용양회는 남북경협과 연관이 깊은 회사 중 하나다. 2002년 경수로사업 당시 현대건설에 발전소나 해양구조물에 주로 쓰이는 5종 내황산염 시멘트를 지원했는데 출발지가 북평항이었다. 이곳을 떠난 시멘트는 북한 신포항으로 보내졌다.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구호물자로 5만톤, 2006~2007년 수해지원으로 10만톤의 시멘트를 북으로 보낼 당시 쌍용양회는 이곳을 통해 1만1000톤과 5만톤을 각각 지원했다.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북측의 시멘트 수요는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북한의 시멘트 생산량은 667만톤으로 한국의 10분의1 수준이다. 남북경협과 함께 북평항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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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양회 관계자는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성장의 접착제라 불리는 시멘트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라며 “국내 최대 규모의 시멘트 생산시설과 연결된 북평항이 경협의 출발을 알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