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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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오늘(2005년 5월 21일) '대한민국 자동차의 산증인'으로 불렸던 남자가 영원히 잠들었다. 향년 77세. '안 하면 죽어야지…그런 각오로 모든 일을 하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에 커다란 기여를 한 그는 '포니정'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넷째 동생인 그는 192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며 현대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그러다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 설립과 동시에 초대사장에 취임한 후 기능공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이후 32년 자동차 외길을 걷게된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 사장 취임 1년 뒤 현대차 1호차 '코티나'를 시장에 내놨다. 이어 미국 포드와 합작이 난관에 부딪치자 1974년 최초 국산 모델인 '포니'를 전세계에 선보인다. 이탈리아 디자이너에게 120만 달러를 지불하는 대가로 한국 디자이너 10명을 공동 작업에 참여시켜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을 이끌다 체포된 만해 한용운은 3년간 옥고를 치룬 뒤에도 조국독립을 위해 강연과 집필활동을 이어간다. 언론사에서 논설위원을 겸하며 계몽·사회 참여를 촉구하는 등의 칼럼을 쓰던 그는 백담사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완성된 88편의 시가 90년 전 오늘(1926년 5월20일)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시집 '님의 침묵'에 담겨 출간된다. 시집엔 표제시 '님의 침묵'을 비롯해 '알 수 없어요' '복종' 등이 수록됐다. 한용운의 시는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이뤄진 서정시로 평가된다. 그는 님의 침묵을 통해 높은 예술적 차원과 사상적 깊이를 선보이며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대표작인 님의 침묵은 불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바탕으로 임과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에의 희망을 표현했다. 얼핏 연애시로도 보이는 님의 침묵은 발표 이후 '님'에 대한
"각 도 감사(監司)가 비의 양을 보고하는 법이 있으나, 흙의 건조함과 습함이 같지 아니하고, 흙 속으로 스며든 빗물의 양이 얕고 깊음도 역시 알기 어렵사옵니다…" 농경 사회에선 잦은 가뭄과 홍수에 의한 피해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었다. 특히 강우량은 농사의 풍·흉년을 좌우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선 비의 양을 측정해왔다. 조선 초기 조정에선 농사에 참고하기 위해 각 지방의 강우량을 측정한 자료를 보고받았다. 당시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쓰인 방법으론 비가 내린 뒤 땅에 얼마나 빗물이 스며들었는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빗물이 얼마나 되는지를 재보는 게 전부였다. 정확한 수치가 아닌 추정치였다. 정확한 강우량을 잴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세종 23년, 당시 세자(훗날 문종)는 575년 전 오늘(1441년 5월19일) 현재로선 간단하게 여겨지는 방안을 내놓는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비 온 뒤에 땅을 파서 젖어 들어간 깊이를 재었으나 정확하게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유신체제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지만 이내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으로 정국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된 전두환은 국회와 내각을 무력화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절차에 나선다. 1980년 5월 초부터 신군부 세력의 정치 관여를 반대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이들의 민주화 투쟁은 같은 달 15일 서울역 앞 시위를 통해 시가지를 거의 마비시키면서 신군부를 위협했다. 하지만 이틀 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김대중 등 정치인 26명이 합동수사본부로 연행, 2600여명의 학생·교수·재야인사 등이 체포되면서 '서울의 봄'은 허무하게 끝났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항의해 36년 전 오늘(1980년 5월18일) 오전 10시쯤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교문을 봉쇄하던 공수부대 앞에서 "계엄해제"를 외치며 돌을 던지며 시위했다. 그러자 공수부대는 이들을 살상용 특수 곤봉을 이용해
#해방 후 외국에서 돌아온 거지 가족의 딸인 몽실이는 계부의 폭력 탓에 한쪽다리를 절고 사는 절름발이 소녀다. 몽실이는 전쟁통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지켜보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렸지만, 부모를 대신해 이부·이복동생들을 데리고 생계를 위해 구걸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면서, 동생들과 흩어지게 된다. 하지만 몽실이는 끝까지 꿋꿋하게 버티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30년 후 몽실이는 성실한 구두수선쟁이와 결혼해 남매를 둔 어머니가 된다. 그는 폐결핵으로 요양소에 입원한 이복동생을 위해 닭찜을 싸들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는 등 주변사람들의 의지가 되며 굳세게 살아간다. 분단시대 한국문학의 가장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몽실언니'의 줄거리다. 단발머리에 하얀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몽실이의 모습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의 자화상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한 후,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는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헌법을 개정했다. 이 헌법에 따라 같은 해 7월 총선거가 실시돼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은 장면의 민주당 신파와 윤보선의 민주당 구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4·19 혁명 이후 분출되는 사회 각계 각층의 요구마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여기에 이승만 자유당 정권 청산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각 계층들이 서로의 의견을 내며 논쟁과 갈등이 이어졌지만, 이전 정권에선 상상할 수도 없던 모습이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씨앗이 싹트던 상황에서 장면 정권은 군사반란의 조짐을 수차례 보고받는다. 하지만 장면 총리는 주한미군에 기댄 안이한 판단으로 정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 정부의 정치력 부재와 사회·경제적 혼란, 군 내부 인사에 불만을 품던 군 장교 일부는 정권을 탈취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네놈은 죽어도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옥의 군주 디아블로. 인간세상을 타락시키려 했던 그의 음모는 모험가의 활약으로 저지됐다. 디아블로는 가까스로 '검은 심연'으로 추방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도망치기는커녕 그 악마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를 처단하는 모험자의 일대기를 다룬 게임 '디아블로'의 이야기다. 1996년 12월 시리즈 첫 작품인 '디아블로1'이 발매됐다. 당시 복잡한 게임 방식에서 벗어나 마우스만 이용한 조작방식을 선보여 액션게임을 단순화·대중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잔혹하고 무서운 분위기 때문에 한국 출시는 늦어졌지만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게임 내에서 봉인됐던 디아블로는 4년 후 돌아왔다. 2000년 출시된 '디아블로2'는 단순 호평을 넘어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전세계에 750만 장이 판매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2004년 5월14일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생중계 방송에 쏠렸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수 있는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집중했다. 헌재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며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 64일 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로 복귀했고 노 전 대통령 직무를 대행했던 고 건 전 총리는 원래 직무로 돌아갔다. 당시 청와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탄핵기간은 노 대통령에게 역사를 성찰하고 자아를 재충전하며 국정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학습의 시간이었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같은 해 3월12일. 국회에선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현 대통령의 직위를 박탈하는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한달 전인 2월18일 연 기자회견이 발단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기자회견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
1972년 10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발표와 함께 '유신헌법'이란 새 헌법이 만들어진다. 유신헌법 제53조엔 '긴급조치권'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었다. 역대 대한민국 헌법 가운데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위임했던 긴급권이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공화국(현 캄보디아에 있었던 국가)이 캄푸치아 공산 게릴라에 항복하고 이어 월남마저 공산화되자 안보 위기의식이 퍼졌다. 이에 편승해 박 대통령은 41년 전 오늘(1975년 5월13일) 총력안보와 국민총화를 굳힌다는 명목 하에 9번째 긴급조치를 선포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긴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긴급조치 9호는 △개헌논의 금지 △집회시위 금지 △유언비어 날조유포 금지 △긴급조치에 대한 비방 금지 등을 골자로 했다. 이전에 발동했던 긴급조치 1호
“팬들과 함께 영원히 H.O.T로 활동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2001년 5월13일 H.O.T의 멤버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세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고 돌연 탈퇴를 선언했다. 다섯 멤버 중 세 사람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끝났다”고 밝히면서 H.O.T는 사실상 해체하게 됐다. 토니안, 강타, 문희준, 이재원, 장우혁 5명으로 구성된 H.O.T가 1996년 9월7일 데뷔해 ‘10대들의 우상’으로 활동한지 4년8개월 만이었다. H.O.T는 곡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뒤 ‘캔디’, ‘행복’ 등의 대표곡을 내놓으며 ‘1세대 아이돌’의 원조로 불렸다. H.O.T를 필두로 젝스키스, god, 신화 등이 데뷔하며 지금의 ‘아이돌그룹’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H.O.T는 '팬덤문화의 원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H.O.T의 팬클럽 ‘클럽 H.O.T’는 흰색 풍선을 이용한 응원, 현수막, 플래카드, 응원봉 등을 사용하는 팬덤 문화를 만들어
'보라, 저기 허술한 집에 어두운 방에서 방으로 램프를 든 젊은 여인이 천사와 같이 지나는 것을. 병사들은 구원의 꿈을 보는 듯 어스름한 벽에 비치는 그 그림자에 입을 맞춘다.'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영국의 한 간호사에게 바친 시의 일부다.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사람은 바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나이팅게일은 196년 전 오늘(1820년 5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피렌체에서 영국 귀족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플로렌스라는 이름은 피렌체의 영어식 지명이다. 당시 영국 상류층 여성들은 나이가 차면 사교계에 나가 귀족자제를 만나서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여성상을 거부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겠다는 뜻을 부모에게 전달한 것. 집안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지사였다. 당시 영국에선 간호사를 하녀나 매춘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집안의 반대와 사회의 편견을 뒤로하고 간호사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
“1997년 IBM이 두배의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 딥 블루의 처리능력 또한 두 배가 됐으며, 나는 전 세계 헤드라인을 패배 소식으로 장식한 장본인이 됐다.”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 19년 전 오늘(1997년 5월 11일)은 인공지능(AI)가 최초로 시간제한이 있는 체스 대국에서 인간을 꺾은 날이다. 승리의 주역은 IBM의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블루(Deep Blue)’. 딥블루는 러시아 출신의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와 6번의 대국 끝에 2승 3무 1패의 기록을 거두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1998년이면 컴퓨터가 세계 챔피언을 꺾을 것’이란 미래학자 레이몬드 커즈와일의 예측보다 1년 앞선 승리였다. 딥 블루의 모태는 카네기 멜론 대학교 쉬펑슝 교수의 칩 테스트 프로젝트. 프로젝트에서 최초로 탄생한 컴퓨터의 이름은 깊은 생각이란 의미의 딥 쏘우트였다. 딥 쏘우트는 1989년 카스파로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패배하고 만다. 이후 쉬평슝 교수는 1989년 IBM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