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작품의 핵심만 담았습니다.
대학 시절 담당 과목 교수님이 갑자기 바뀐 적이 있다. 학계에서 워낙 유명한 분이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능 출제위원으로 들어가신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다. 그럼에도 교수님이 복귀하셨을 때 누구 하나 실제로 수능 문제를 출제하고 오셨느냐고 묻지 않았다. 당시 수능을 치른 지 몇 년이 지난 대학생이었지만 그만큼 수능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대한민국에서 매년 치러지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그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싸인 출제위원들을 소재로 삼는다.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웃음만이 아니다. 수능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풍자와 블랙코미디의 색채가 짙다.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만큼 캐릭터 하나하나가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국어과 출제위원장 문주열을 연기한 유재명은 데뷔 이래 가장 얄미운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렇게까지 미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얄미운 인물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코미디 영화가 갖춰야 할 웃음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다. 얄미움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내는 유재명의 연기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수능 검토위원장 박경태 역의 김영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극 중반에 등장하지만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자칫 극의 흐름이 느슨해질 수 있는 시점에 등장해 웃음과 반전을 더한다. 특히 김영민의 등장은 작품의 장르적 색채를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단순한 코미디에 머물던 영화가 블랙코미디로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장르적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완성했다.
지방대 출신 국어 교사이자 초보 출제위원인 맹보람을 연기한 이선빈도 눈부시다. 자칫 열정만 앞서는 민폐 캐릭터로 비칠 수 있지만 이선빈만의 사랑스러움이 더해지면서 인물의 매력이 살아난다. 나아가 맹보람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따뜻하게 완성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서툴지만 진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어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요즘 같은 OTT 시대에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는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사운드의 쾌감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명절 연휴마다 코미디 영화가 꾸준히 관객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지닌 엔터테인먼트적 기능, 즉 관객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본질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극장은 그 즐거움을 혼자가 아닌 다른 관객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이러한 영화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익숙하면서도 민감한 소재인 수능을 두고 함께 웃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까지 더해져 극장에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영화로 완성됐다. 웃음으로 시작해 풍자와 여운을 남기는 작품, '수능, 출제의 비밀'은 극장에서 함께 보는 영화의 즐거움을 다시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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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대한민국 2급 국가기밀인 '수능 출제'를 위해 40일간 봉인되는 출제 본부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지방 소도시 국어 교사 맹보람(이선빈 분)이 오탈자도 시비도 없는 '문제없는 문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미션 코미디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2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