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네팔 대학생들, 농식품 창업 가이드라인 개발…세계식량포럼에서 공유
로마에서 FAO 본부 전문가와 실용성 점검…다른 국가로 확장 가능성 모색

피자 한 판에 농업의 일자리는 몇 개나 숨어 있을까. 밀과 토마토를 기르는 농민, 재료를 가공하는 사람,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운송과 포장, 판매를 맡는 사람들까지.
익숙한 음식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농업은 밭에서 끝나는 산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난 13일 이탈리아 로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본부에서 열린 세계식량포럼(WFF) 현장.
한국 대학생들이 WFF '디스커버리 스테이션'에 모인 현지 중·고등학생들에게 피자를 예로 들어 농식품산업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들이 소개한 것은 두 달 전 네팔 농촌에서 만난 청년들의 고민을 풀기 위해 직접 만든 '농업 창업 나침반'이었다.
지난 8월 네팔 현장을 찾았던 한국과 네팔 대학생들이 이번에는 로마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이 함께 만든 '네팔 청년을 위한 농업비즈니스 창업 가이드라인(Agribusiness Toolkit for Nepali Youth)'을 FAO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고, 세계 각국의 청년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여정의 시작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와 네팔사무소가 운영한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양국 청년들은 온라인으로 만나 네팔의 농과 식품시장을 공부했다.
8월에는 네팔 전통시장과 대학, 농식품 스타트업, 농촌 지역사회를 직접 찾아가 생산자와 상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농업에 관심이 있어도 어디서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창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자본과 기술, 정보, 인적 연결망을 구하기 어려웠다.
현지에서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농업에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기회를 자신의 삶과 연결할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학생들의 판단이었다.
학생들은 생산뿐 아니라 가공·물류·디지털 서비스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농업비즈니스 창업 가이드라인은 성공 사례를 외우게 하거나 특정 사업을 권하는 매뉴얼이 아니다.
먼저 자신의 관심과 능력, 활용할 자원을 점검한다. 다음으로 지역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농산물 생산·가공·유통·마케팅 과정의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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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국과 네팔의 실제 사업 사례를 참고해 부족한 조건과 금융·교육·네트워크 지원을 찾고, 마지막으로 사업의 위험과 지속가능성을 따져 스스로 방향을 선택한다.
책자와 웹사이트 두 형태로 개발해 현장에서 활용하고, 경험을 쌓으며 계속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 기회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과 '나는 어디서 시작할 수 있을까'에 답하는 일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였다.
창업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청년이 처한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스스로 선택할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농업을 무조건 지키라고 말하는 대신 농업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할 방법을 제안한 셈이다.
로마는 그 해법을 시험하는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학생들은 FAO 본부의 농식품 가치사슬 개발 전문가, 청년 일자리·창업을 다루는 '그린 잡스(Green Jobs)' 사업팀 등을 만나 창업 가이드라인의 접근성과 시장 연계 가능성, 웹 활용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네팔에서 확인한 문제와 해결책을 국제기구 실무자들의 눈으로 다시 검토했다.
창업 가이드라인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청년들이 읽고 사용할 수 있는지, 시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지 되짚었다. 로마 방문은 성과 발표인 동시에 또 한 번의 수정 과정이었다.
이어 16일 세계식량포럼 청년 전시회(Youth Exhibition)에서는 한국조지메이슨대 신다연·배수현·정희나·박고은 학생과 네팔 니스타 다와디(Nistha Dawadee) 학생이 함께 부스를 운영했다.
네팔에서 서로의 경험을 모아 만든 책자와 웹사이트를 이번에는 세계 각국 참가자들에게 직접 펼쳐 보였다.

누군가가 청년을 대신해 농업의 미래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청년 스스로 자신들의 해법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세네갈 등 여러 나라 관계자들이 자국에서의 활용 가능성에 관심을 보였고 후속 온라인 회의도 예정됐다.
학생들은 FAO 네팔사무소와 함께 창업 가이드라인을 현지 청년들이 활용할 방안을 더 찾아갈 계획이다.
농촌을 떠나는 청년에게 남으라고 말하기는 쉽다. 어려운 일은 그들이 남을 만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질문이 로마로 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탕(Tang) 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장은 "청년들의 손에서 태어난 이 작은 나침반이 다시 네팔 농촌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첫걸음을 비춰주게 될지 기대된다"며 "우리 농업의 미래는 그러한 청년들의 대답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