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세계 식량가격이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시장에서 밀과 옥수수 가격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반갑다. 필요한 곡물을 조금이라도 싸게 들여올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밥상의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숫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보다 1.2%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여전히 5.9% 높다.
더구나 2026/27년도 세계 곡물 생산량은 전년보다 1.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쌀과 밀 생산량도 각각 2.5%, 2.8%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물론 당장 세계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체 곡물 재고는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쌀 재고는 감소한다. 세계 식량시장의 숫자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국제 곡물시장은 거대한 바다와 닮았다. 오늘은 잔잔하지만 내일은 거센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 어느 나라의 가뭄이 밀 가격을 흔들고,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 곡물 운송을 막는다.
수출국이 자국민의 식량부터 챙기겠다며 빗장을 걸면 돈이 있어도 곡물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그때마다 우리는 국제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얼마나 생산됐는지, 가격은 얼마나 올랐는지, 어느 나라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는 뒤로 밀려난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할 수 있는가.'
한국의 들녘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농촌에는 여전히 논과 밭이 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은 늙어간다. 생산비는 오르고 일손은 부족하다.
농지를 물려받을 사람도, 농사를 이어갈 사람도 마땅치 않은 곳이 적지 않다. 농업의 생산기반이 조금씩 약해지는 동안 우리는 값싼 수입 농산물에 익숙해졌다.
물론 모든 식량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는 없다. 좁은 국토와 제한된 농업자원을 생각하면 국제무역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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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선을 다변화하고 해외농업 협력을 확대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수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국내 생산기반의 가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농지는 한번 사라지면 되돌리기 어렵고, 농사를 포기한 사람이 다시 들녘으로 돌아오는 일도 쉽지 않다.
식량 생산기반은 가격이 올랐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는 공장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농민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땅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최근 세계 식량시장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연료 수요가 늘면서 식용과 에너지용으로 함께 사용되는 대두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농산물이 사람의 밥상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와 항공기의 연료로도 쓰이는 시대다. 식량안보와 에너지안보가 같은 농지를 바라보게 된 셈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의 식량안보는 어디에 서 있는가.
국제 식량가격이 내려가면 수입 부담을 덜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그 안도감이 국내 농업을 지키는 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식량안보는 곡물 창고에 얼마나 쌓여 있는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기가 닥쳤을 때도 씨앗을 뿌리고 수확할 사람이 있는지, 그들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지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세계 곡물값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사라진 논밭과 농민의 삶은 국제시장에서 다시 사 올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오늘의 곡물가격이 아니라, 내일도 곡식을 거둘 수 있는 땅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