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고(故) 김귀정 열사의 그날 이야기를 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244회는 '귀정이를 지켜라 - 35년간의 사수' 편으로 꾸며졌다.
깊은 울림이 있던 이날 '꼬꼬무'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2.4%를 기록했다. 직전 방송분 시청률 2.5%보다 소폭 하락했다. 시청률은 하락했지만 동시간대(오후 10시 20분대) 지상파 교양, 예능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날 '꼬꼬무'에서는 고 김귀정 열사의 비극, 그날의 이야기를 다뤘다.
1991년 5월 26일 새벽, 서울 명동의 한 병원 앞을 경찰 버스 수십 대와 수많은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병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경찰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이들은 성균관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500여 명의 청년들이었다. 그렇게 병원 건물을 점거하고 노숙을 불사하며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 하나, 친구 김귀정의 시신이었다.
당시 성균관대학교 학생이었던 26세 김귀정은 전날 오후 충무로 인근 골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대규모 인파에 밀려 넘어지면서 발생한 질식성 압박사, 즉 단순 사고사라고 발표하며 신속한 부검과 장례를 종용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공권력이 강제 부검을 시도할 거라고 판단한 친구들은 학교 앞 서점 게시판을 통해 귀정이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렇게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하룻밤 사이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은 1천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김귀정 사수대'가 되어 병원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영안실을 지키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둘째 딸 귀정이는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했다. 낮에는 공장 보조,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 속에서 친구들이 잡혀가고 다치는 모습을 목격하며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결국 거센 시위 현장으로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 기한이 임박한 새벽, 경찰은 강제 시신 탈취를 시도했다. 전경 12개 중대 1500여 명이 동원됐다. 진압용 살수차가 최루액이 섞인 물줄기를 쏘며 경찰들이 병원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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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학생들은 머리가 깨지고 화상을 입으면서도 1시간 넘게 병원을 사수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다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귀정이 어머니가 결국 부검을 받아들였고, 사망 원인은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공식 발표됐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과 각계 인사들은 민간 '진상조사단'을 꾸려 독자적인 조사에 나섰다.
부상자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확보해, 경찰이 일명 '토끼몰이'를 피해 골목으로 도망치던 시위대를 과잉 진압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날 경찰은 30분간 무려 2700발이 넘는 최루탄을 쏘았고, 한 학생은 투척형 최루탄인 '사과탄'에 머리를 직격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날 골목 현장 사진에는, 쓰러진 학생들을 경찰이 짓밟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김귀정 열사가 거리로 나섰던 1991년 봄, 민주화 요구를 폭압적으로 탄압해 온 정권에 맞서 청년들의 분신·투신이 이어지며 전국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이런 격동의 정국 속에서 김귀정 열사 역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검찰은 끝까지 과잉 진압을 부인하며 시위대끼리 밟힌 사고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귀정 열사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3만여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고인을 추모했다. 리스너로 출연한 조재윤은 "많은 사람이 애도하고 참여해주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주셨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된 거다"라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가족과 친구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마침내 법원은 김귀정 열사의 죽음이 경찰의 직무 집행상 과실과 과잉 진압으로 발생했음을 뒤늦게 인정했다.
고인이 떠난 지 어느덧 35년. 그날의 이야기는 부끄럽지 않은 삶과 정의로운 태도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