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열의 '임팩트 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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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3년을 기다린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를 하나의 정책 틀 안에 놓고 사회연대금융 전담기관과 중개기관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제 사회적 경제도 단편적인 지원사업을 넘어 지속적인 금융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내놓은 공급계획도 상당하다. 미소금융 공급을 연간 6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늘리고, 신용보증기금 보증은 2030년까지 35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 은행권은 향후 3년간 약 4조3000억원, 새마을금고는 5년간 2000억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오랫동안 금융 접근성 부족을 호소해 온 사회연대경제조직에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만, 돈의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금융의 방식이다. 지금까지와 비슷한 대출과 보증을 단순히 더 많이 공급하는 데 그친다면, 사회연대금융이라는 새로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현장이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사회적경제조직을 위한 금융은 지분투자와 장기 융자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에는 지분투자를 하고, 그렇지 않은 조직에는 운전자금을 빌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다수가 영위하는 지역 식품, 돌봄, 문화예술, 자원순환, 소규모 제조와 유통 사업은 기술 스타트업처럼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고 기업가치가 급상승하는 모델이 아니다.
이들의 성장이 더디거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다. 성장의 단위가 다르다. 한 번에 전국 시장을 장악하는 대신 매장 하나를 더 열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고, 한 지역에서 검증된 서비스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며 성장한다. 기업의 성장 방식과 투자금융이 기대하는 성장 방식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장기 융자는 기업 전체의 신용도와 과거 재무제표를 본다. 담보가 부족하거나 업력이 짧으면 문턱을 넘기 어렵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석 달 뒤 매출로 회수할 명절 선물세트 생산비인데 금융기관은 향후 몇 년간의 상환 능력을 묻는다. 확정된 납품처가 있어 원재료를 사면 바로 매출을 만들 수 있는데도 과거 재무실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구하지 못한다. 금융의 시간이 사업의 시간과 맞지 않는 셈이다.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이 프로젝트 기반 금융이다. 매장 한 곳의 추가 출점, 석 달 동안 운영하는 팝업스토어, 명절 선물세트 생산, 공연 한 편, 확정된 납품계약, 신규 서비스의 파일럿처럼 매출 발생 시점과 상환 재원이 비교적 분명한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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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의 중심도 기업가치나 담보가 아니라 주문서와 계약서, 예상 매출, 원가율, 판매기간, 손익분기점이 된다.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현금흐름으로 원금과 수익을 회수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돈을 다시 다른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사업에 투입할 수 있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이야기하는 PF가 아니라, 작지만 구체적인 사업 기회에 금융을 연결하는 것이다.
큐네스티 현장 사례도 그동안 이런 방식의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 명절 한우 판매를 앞둔 영농조합법인에는 원물 매입자금을 공급했다. 또 노인 연하식을 제조하던 사회적기업이 기존 사업을 넘어 고부가가치 영역인 메디컬푸드 수입·유통에 진출하고자 했을 때, 신사업의 시장성을 검증하는 파일럿 프로젝트에 2억원을 공급했다. 기업은 실제 수입과 판매를 통해 시장 수요를 확인한 뒤 해당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기업 전체의 과거 실적이나 기업가치가 아니라, 새로운 프로젝트의 실행 가능성과 여기서 발생할 미래 현금흐름을 보고 자금을 공급한 사례다.
프로젝트 금융의 장점은 한 번의 매출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느 상권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매장이 수익을 내는지, 팝업스토어 고객이 상시 고객으로 얼마나 전환되는지, 선물세트의 적정 생산량과 마진은 얼마인지 실제 데이터가 쌓인다. 작은 성공이 반복되면 서비스와 운영방식이 표준화되고, 개별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과 시장에서 복제할 수 있는 사업모델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지분투자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고, 지분을 내놓지 않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금융은 지분투자보다 낮은 단계의 금융이 아니다. 기업의 사업 방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독립적인 성장금융이다.
문제는 이런 금융이 돈만 있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 계획에는 미소금융, 신용보증기금, 은행권, 새마을금고 등 제도권 채널의 공급 규모와 기간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반면 사회적경제조직을 현장에서 발굴하고 금융과 육성을 함께 수행해 온 민간 중개기관이 무슨 역할을 맡고, 그 비용과 위험을 어떻게 보전받을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은행과 상호금융기관은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관리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러나 작은 기업을 찾아다니며 이번 명절에 얼마의 원물을 매입해야 하는지, 새 매장의 손익분기점은 어디인지, 공연의 좌석 판매율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까지 살피기는 어렵다. 프로젝트 금융은 표준화된 신용심사만으로 운용하기 힘들다. 기업과 사업을 함께 들여다볼 사람이 필요하다.
그 역할은 그동안 사회적금융을 현장에서 공급해 온 민간 중개기관이 맡아야 한다. 이들은 사회연대경제조직을 가까이에서 만나 자금 수요를 발굴하고, 대표자의 실행력과 거래처 관계, 사업의 계절성, 지역 수요를 판단해 왔다. 돈을 공급한 뒤에도 재무와 사업계획을 함께 점검하고 판로, 컨설팅, 후속 투자까지 연결해 온 경험이 있다.
민간 중개기관은 금융상품을 전달하는 단순 창구가 아니다.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사업성을 검토하고, 현금흐름과 상환 구조를 설계하며, 실행 과정까지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깝다. 이러한 역할 없이 제도권 자금만 늘어나면 사회연대금융은 결국 공적 보증을 붙인 일반 대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의 후속 제도는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담기관은 재원을 조성하고, 은행과 상호금융기관은 금융 인프라와 자금 공급을 담당하며, 현장 경험과 투·융자 실적을 갖춘 민간 중개기관은 프로젝트 발굴·심사·구조화·사후관리와 기업 육성을 책임지는 구조다. 중개기관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면 그에 맞는 관리보수와 손실준비금, 보증과 후순위 재원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조직에 필요한 것은 모든 기업을 유니콘으로 만들겠다는 자본도, 낮은 금리로 오래 빌려주는 돈만도 아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매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사업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금융이다.
사회연대금융은 이제 기업의 과거 재무제표만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만들어낼 미래의 현금흐름을 봐야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찾아내고 실제 성과로 만들어낼 현장의 중개기관을 금융체계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작은 프로젝트의 성공이 쌓이면 기업이 성장하고, 기업이 성장하면 더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열어야 할 새로운 금융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