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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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발표한 'AI 기본의료 전략'은 무척 전향적이다. 의료AI를 산업으로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이 전략이 한국 의료와 의료AI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으며, 남은 숙제는 예산이라고 썼다. 이제 그 예산안이 나왔다. 의료AI는 보건산업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병원에서 응급환자를 선별하고, 영상판독을 돕고, 환자를 적절한 병원으로 의뢰·회송하는 데 쓸 수 있다. AI가 의사 부족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부족한 의료진의 역량을 넓히고 지역 의료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공백을 메울 현실적인 수단인 셈이다. 2027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즉 정부안에는 취약지 일차의료 AX 패키지, 응급 AI 플랫폼, 개인건강기록 기반 AI, 의료영상 공유, 국가 보건의료데이터 허브 등이 담겼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규모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개인건강기록 기반 AI와 의료영상 공유에 387억원, 데이터 허브와 소버린 AI에 349억원이 편성됐다.
AI는 이제 사람과 대화하며 문제 해결을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고, 움직이고, 물건을 다루며 현실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화제의 중심에는 휴머노이드가 있다. 미국에서는 피규어(Figure)와 앱트로닉(Apptronik) 같은 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몰리고 있고, 중국에서는 150여개 기업이 휴머노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도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생산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휴머노이드가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산업현장도 대부분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기존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사람의 일을 하려면 인간과 비슷한 몸을 가진 로봇이 유리하다. 하나의 로봇이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범용성도 매력적이다.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에 투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정교한 손과 안정적인 이동능력, 인간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지능을 갖추게 된다면 산업현장뿐 아니라 가사, 돌봄, 서비스 등 거대한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지난 3일, 문화계에는 두 가지 소식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두고 중국관이 철수를 선언했다. '대만관'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으로 문체부 산하 18개 기관을 7곳으로 묶는다고 발표했다. 통합 명단의 맨 앞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있다. 지금 전국에서 열리는 '2026대한민국미술축제'의 공동 주최 기관이 바로 예술경영지원센터다. 광주비엔날레는 이 축제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한쪽에서 국제행사가 외교 갈등으로 번진 날, 다른 쪽에서는 일손의 통합을 선언한 셈이다. '대만관' 사태는 단순하지 않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대만 문화부는 전시관 이름의 '국립대만미술관' 약칭(NTMoFA) 표기를 6월부터 줄곧 항의했다고 밝혔다. 비엔날레 측은 참여 유형에 따라 국가관과 기관관으로 나눴을 뿐, 행정 절차상의 이견을 검열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결국 '대만관'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고, 이번에는 중국이 반발해 철수했다. 세계적인 미술 행사가 외교적 지뢰를 건드리고도 결론을 내기까지 석 달이 걸렸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새' 일부) 국가교육위원회가 2033학년도 수능부터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겠단다. 내년 3월 확정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2027∼2036년)에 담긴다고 한다. 이번에도 포수(국가)가 납(대입제도 개편)으로 순수(미래인재 양성)를 겨냥했는데, 상한 새(공교육 붕괴)는 피(사교육 창궐)에 젖게 될 것인가. 한국 교육정책사는 미래를 위한 국가적 도전이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였다. 역대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1969), 고교평준화(1974), 본고사 폐지(1980)는 초·중·고생을 순차적으로 '과외'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민주화 이후엔 '시험 대신 전형'으로 응전했다. 수시(1997), 입학사정관제(2007), 학생부종합전형(2015) 등 공교육 강화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사교육은 시험에도 적응하고 전형에도 적응했다. 인구가 줄어도 1인당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났다.
과학기술 강국을 상징하는 지표 중 하나는 노벨과학상이다. 노벨과학상만으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을 평가할 순 없지만,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하면서 과학선진국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벨과학상은 한 나라의 연구역량과 혁신 성과를 세계가 인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강국은 어떤 나라일까. 세계인이 사용하는 AI 앱이나 플랫폼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AI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거나 세계가 인정하는 AI 연구자와 기업가를 배출하는 나라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AI 강국(AI G3)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에서는 국가 순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시장에서 누가 표준을 만들고, 누가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중요한 것은 국가 순위 자체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기술이 얼마나 실질적 경쟁력을 갖느냐다. 오늘날 세계 AI 시장은 엔비디아, 구글, MS, 메타, 오픈AI, TSMC 등 거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팔로워 수천만, 무대에 등장하면 터지는 플래시 세례. 가수도 배우도 아니다. 인플루언서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이다. 일견 새로운 유형의 스타가 등장하는 시대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을 보고 정책을 보는 필자에게 이들은 새로운 혁신기업의 등장이다. 인플루언서를 필두로 하는 '크리에이터 경제'의 경계는 더 이상 조회수와 광고수익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크리에이터 경제가 2023년 약 2500억달러(약 346조원)에서 2027년 4800억달러( 664조원)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성장의 방식이다. 크리에이터는 콘텐츠와 팬덤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제조기업은 크리에이터와 소비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장을 빠르게 넓혀간다. 콘텐츠가 기업이 되고, 영향력이 브랜드가 되며, 팬덤이 시장이 되는 변화. AI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한다. 많은 직원이 없이도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을 실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성장의 새로운 공식이 출현한 것이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혁신성은 생태계에서 출발한다.
K컬처와 K콘텐츠가 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전파하는 매개체로서 미술관·도서관·박물관 정책이 필요해졌다. 유력한 방안으로 '라키비움'이란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라키비움(Larchiveum)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메건 윈젯 교수가 2000년대에 주창한 정보수집 및 문화에 관한 복합공간이다. 도서관(Library)·기록관(Arcvhive)·박물관(Museum)의 영어 합성어다. 학생들이 학업 관련 정보·자료 수집을 하느라 도서관 이외에 여러 소스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노고를 안타깝게 여겨 위의 세 가지 개념을 통합한 공간 또는 시스템을 구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보관하는 공간과 열람하는 도서관이 협력하고 통합해 나가는 것이 추세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까지 더하는 작업이 가세한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흔히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국립도서관(리슐리외 분관)이 꼽힌다. 라키비움은 가치있는 기록을 분류 보관하고 대여하는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서 다채로운 지식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보 공유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얼마 전인가 진료실에 스무 살 남짓한 여성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생글생글 웃기만 하길래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재 초진이란 등록상황을 보니 과거 내 진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예전 의무기록을 뒤지고 서야 15년 전 오타모반을 치료받던 아이란 걸 알았다. 오타반점은 주로 눈 주위에 푸르스름한 점이 태어날 때부터 발생하는 병이다. 아마도 15년 전 꼬맹이 때 나에게 자주 와서 레이저를 받았을 것이다. 그날 내 눈 앞에는 흔적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 앉아 있었다. 솔직히 의사 노릇 하며 이런거야 말로 진정한 보상을 받는 느낌일 거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 반에 꼭 한둘씩 '점쟁이'란 별명을 단 아이가 있었다. 사주를 봐주는 아이가 아니라 얼굴 어딘가에 점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붙은 이름이었다. 코 점쟁이, 입 점쟁이…. 부르는 쪽은 놀리는 줄 모르고 불렀고, 불리는 쪽은 짐작건대 속이 오래 문드러졌을 것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표가 소리 없이 요동치고 있다. 올해 2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동기 대비 15. 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 7%였다. 소득 증가율이 생산 증가율을 무려 11. 9%포인트나 앞질렀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격차다. GDP가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면, GDI는 그렇게 생산한 결과로 얼마나 많은 실질 구매력을 손에 넣었는지를 말해준다. 같은 양의 반도체를 팔더라도 수출 가격이 오르고 원자재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 생산량은 그대로여도 국민경제 전체의 실질 구매력은 커진다. 최근 AI 반도체 호황과 교역조건 개선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한국 경제는 생산보다 더 큰 소득을 얻는, 보기 드문 풍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 풍년을 '국민 모두의 통장이 두툼해졌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GDI 급증으로 생긴 이익은 1차적으로 수출 기업의 영업이익과 정부 세수로 들어간다. 이것이 고용과 임금 상승, 내수 활성화라는 경로를 타고 가계로 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걸린다.
생성형 AI의 확산 속도는 놀랍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러 사람이 며칠에 걸쳐 하던 자료 검색과 정리, 번역, 코딩, PPT 작성 등을 이제는 한 사람이 AI의 도움을 받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AI가 효율성을 높인다는 실증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MIT의 대니엘 리 연구진이 5000여 명의 고객상담원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생성형 AI 도입 이후 시간 당 처리건수가 평균 14% 증가했다. MIT 경제학과의 또다른 연구에서는 챗GPT를 활용한 전문직 종사자의 문서 작성 시간이 평균 40% 줄고 결과물의 품질은 18%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작 경제 전체의 생산성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바 AI 생산성 역설이다. 미국 연준도 AI의 성능과 투자는 빠르게 확대되고 기업의 활용도 역시 높아지고 있지만, 그 효과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나타났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고 지난달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처음이 아니다.
안거는 승려가 1년에 두 번 겨울과 여름을 맞아 석 달씩 수행처에 머물며 유행하지 않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여름에는 하안거, 겨울에는 동안거라 이름한다. 인도에서 우기 석 달 동안 적정처에 머물며 수행하는 것이 시작이다. 동북아의 여름과 겨울에 자연스럽게 안거를 하게 됐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여 음력 7월 15일에 해제한다. 해제일인 백중(百中)이 되면 백성들은 하루를 쉬면서 농한기 일꾼들에게 백중돈이나 새옷을 주기도 하고 장터 등지에서 축제를 열며 보냈다. 불교에서는 안거가 끝나는 그날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 등 인연 영가를 천도하는 재를 지낸다. 그중에 천도재 중에 독송하기도 하는 '부모은중경'의 내용이 어버이날 부르는 노래인 '어버이 은혜'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인간의 죽음이나 사후 세계관, 윤회와 천도는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은 다각도로 해석되지만 미신이나 단순한 의식 이상으로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추스르고 치유하는 유족들의 의식이다.
"기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 얼마 전 국가 R&D(연구개발) 과제의 글로벌 기술사업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만난 한 벤처기업 임원이 꺼낸 첫 마디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랫동안 공공성과의 시장 진출을 연구해 온 필자에게는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왜 어떤 기술은 시장을 바꾸고, 어떤 기술은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할까. 그간 수많은 기업을 만나보며 뛰어난 기술이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작은 아이디어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시장에서 실패하는 기술은 대부분 기술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성공하는 과정을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이지만 시장은 좋은 기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