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학생시위 '기회의 평등' 요구한 것
정부, 혁신 경쟁에 뒤쳐져 곳간이 비어
자유의 조건에 국가경쟁력 포함돼야
![[파리=AP/뉴시스] 1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각종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학생, 학부모, 교사, 노동조합 등도 가세한 이들의 시위는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6.10.14. /사진=민경찬](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10/2026101509344117295_2.jpg)
"나의 학습 노트 위에 /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 모래 위에 눈 위에 /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 (제2~20연 생략) //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 자유여."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1895~1952)의 시 '자유'의 앞뒤 부분이다. 그는 약 70개 사물과 아미지 위에 20번이나 "너의 이름"을 쓴다. 쉼표와 마침표도 없이 84행까지 이름을 숨긴다. 독자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제85행에서 이름이 나온다. 시인은 원래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유"를 호명했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세상 만물을 자유의 영토로 귀속시킨 대하 드라마가 된 것이다. 영국 공군은 나치 치하의 프랑스 상공에서 이 시를 무기와 의약품 등과 함께 낙하산으로 떨어뜨렸다. '자유'는 사랑에서 출발해 민족해방을 넘어 인류의 열망을 담은 작품으로 등극했다.
최근 프랑스 '고딩'들이 공부하고 싶다면서 '시가전'을 벌이는 소요사태는 인류 최초의 일이 아닐까? 학생들에게 학교는 억압이고, '농땡이'야말로 자유일텐데 왜? 이 시를 다시 펼쳐보다 뒤늦은 발견을 하게 됐다.
그들이 내건 구호는 "공교육은 죽었다" "버려진 학교, 빼앗긴 청춘"이란다. 한 반 30명의 과밀학급, 교사 없이 프린트물 자습, 폭염 속에 선풍기조차 없는 교실…. "재학생 2000명에 여자 화장실이 하나인데, 그나마 휴지와 비누조차 없다" "유리창 깨진 창문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있다" "수업을 듣다가 정전이 되고, 시험을 치다가 교실이 깜깜해져 시험이 취소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진심으로 요구하는 건 "기회의 평등"(르몽드)이다. 능력주의의 약속, 즉 노력하면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는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해달란 것이다. 학교에서 내 인생을 준비할 수 없다는 프랑스 MZ세대의 불안감은 국가의 실패, 사회적 진보에 대한 믿음의 약화를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교육 투자는커녕 더 줄여야 한다. 혁신 경쟁에 뒤쳐져서 곳간이 비었다.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부담금)이 GDP 대비 44%(OECD 평균 34%)로 증세도 어렵다. 국가부채가 천문학적이고, 그 이자가 교육 예산보다 많다.
프랑스인들은 미래가 과거보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접은 듯하다. 그래서 고딩들은 묻는다. 공책과 책상에 '자유'라고 써봐야 무슨 소용인가. 왜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없는가. 말로만 자유가 아니라 실질적 자유를 달라! 그들의 선조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했다면, 그들은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자유, 미래를 선택할 자유를 위해 경찰과 싸우다 6000명 이상 잡혀갔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왜 '표현의 자유'는 흘러넘치는데 직장과 집 얻기, 결혼과 출산이 이토록 어려운지를 묻고 있지 않은가.
자유의 조건에 국가경쟁력 또는 강한 국가역량이 포함돼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AI 경쟁에서 뒤진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지킬 수 있을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신형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면서 "자유를 누리려면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권력만큼이나 국가의 무능 역시 자유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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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이후 수십번 읽은 '자유'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눈에 확 밟힌 구절이 있다. "회복된 건강 위에 / 사라진 위험 위에 / 회상 없는 희망 위에 /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제20연)는 대목이다. 인류는 "황금빛 조각상 위에 / 병사들의 총칼 위에 / 제왕들의 왕관 위에"(제3연) 자유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왕정과 파시즘과 공산주의와 권력의 횡포를 이겨냈다. 국가가 시민의 건강과 안전과 희망을 책임지는 게 자유의 마지막 퍼즐로 남은 셈이다. 이는 자유의 후퇴가 아니라 진화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