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이어 또 화마…주민 127명 이재민 대피소 이전

아무것도 못 챙기고 나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네요.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 김모씨(40대)는 까맣게 그을린 마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로 황급히 대피한 김씨는 슬리퍼 차림이었다. 그의 집은 화재가 시작된 2지구에 있다.
소방당국은 28일 오전 4시39분쯤 구룡마을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불이 난 지 약 13시간 만이다. 불은 2지구 가건물에서 시작돼 강한 바람을 타고 1·3·7지구까지 빠르게 번졌다. 30대 여성 1명이 다리 부상을 입은 것 외에 추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룡마을에서는 대형 화재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는 약 8시간30분 만에 진화됐으며 주택 120여채가 전소됐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 큰불이 났다. 다행히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은 반복되는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고 임시 숙소를 전전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도 주민 127명이 구청에서 마련한 인근 중학교 체육관과 호텔 등 임시 숙소로 대피했다.
주민들은 막막함을 호소했다. 지난 1월 화재로 집을 잃었다는 60대 최모씨는 "그때 집이 모두 타버려 지금까지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마을 곳곳에 소화기가 있지만 이번에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불이 빠르게 번졌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강일 구룡토지주민협의회 회장은 "불이 시작된 곳은 빈집으로 알고 있다"며 "전기도 차단돼 있고 연탄도 없는데 왜 불이 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연성 자재 밀집·소방용수 부족에 대형 화재 '취약'

구룡마을에서 대형 화재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소방시설 부족 문제가 맞물려 있다. 불에 타기 쉬운 자재로 지어진 가건물이 밀집해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반면 진화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마을 내부에는 상수도 배관이 없어 소화전 설치가 어렵고, 주민들이 사용하는 물탱크도 대형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하다. 소방당국은 마을 내부가 사유지인 점도 상수도 설치의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소방 관계자는 "마을 내부에는 사실상 소화기 외에 소방시설이 전무하다"며 "소방용수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은 구룡마을 화재 진압에서 늘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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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대부분이 가연성 자재로 지어진 점도 위험을 키운다. 구룡마을에는 보온용 솜인 '떡솜'과 합판, 비닐 등으로 지어진 가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을 곳곳에 놓인 액화석유가스(LPG) 가스통과 전선 등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전날 현장에서는 한때 폭발음이 들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별도의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강남소방서는 구룡마을 전담 소방대를 편성하고 이른바 '구룡펌프차'를 투입해 매일 정기적으로 순찰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도 "최근 가스·전기 분야 전문가들이 각 가구를 방문해 점검했다"며 "담당 직원이 상주하며 매일 현장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과 소방 등 관계기관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합동감식 일정과 방식 등을 협의했다. 구체적인 재산피해 규모와 발화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화재 원인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