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금속 촉매 새 원리 입증
분자-금속 표면 결합의 '영향 범위' 기존 이론 깨
3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게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국경이 닫혔던 시기, 오로지 과학 연구를 위해 한국으로 터를 옮긴 과학자가 있다. 물리학자 드미트리 보로딘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그룹리더다. 한국에서 약 3년을 쏟아부은 연구 성과가 최근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과 독일 막스플랑크 다학제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이 금속 촉매의 새로운 작동 원리를 실험적으로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분자-표면 결합 세기의 '영향 범위', 실험으로 최초 입증

금속 촉매는 금속 원소나 화합물을 이용해 화학 반응이 더 잘 일어나도록 돕는 물질이다. 오늘날 암모니아 생산을 가능케 한 '암모니아 합성 기술'이 금속 촉매를 활용한 대표적인 기술이다.
질소는 분자 간 결합이 매우 끈끈해 초고온 환경이 아니고선 분해되지 않는데, 철(Fe) 촉매를 이용하면 쉽게 분해할 수 있다. 질소 분자가 철 표면에 붙으면 전자 이동에 의해 분자의 내부 결합이 붕괴된다. 질소 분자는 원자 단위로 분해되고, 이렇게 나온 질소 원자가 철 표면 위에 있던 수소 원자와 만나면 암모니아가 된다.
이처럼 금속 촉매를 이용한 화학 반응은 반응물인 분자가 금속 표면에 달라붙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분자와 금속 간 결합의 세기다. 분자가 금속에 잘 붙어야 이후 화학적 반응도 순조롭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분자와 금속 사이의 화학 결합을 설명하는 이론은 주로 분자가 직접 맞닿는 주변 원자와의 상호작용만 고려했다. 금속 표면에 붙은 원자나 분자가 멀리 떨어진 영역의 전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멀리 떨어져 있는 전자가 분자와 표면 간 결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영향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도 분자마다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원자들이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쌓여 있는 백금 표면을 제작한 뒤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일산화질소 분자가 백금 표면과 결합하는 세기를 측정·비교했다.
그 결과, 분자와 금속 표면 사이에서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전자는 약 100Å(옴스트롱·1억분의 1㎝)에 걸쳐 퍼져 있었다. 분자 주변의 아주 좁은 환경만 결합 세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던 기존 이론을 뒤집는 결과다. 보로딘 그룹리더는 "분자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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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금속 촉매 연구의 방향도 이번 발견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분자 주변의 국소 환경만 고려하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보다 넓은 공간적 범위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서다.
연구 위해 독일→한국 온 과학자의 도전…틀을 깨다

한편 이번 연구를 이끈 보로딘 그룹리더의 배경도 독특하다. 그는 독일 괴팅겐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친 뒤 2023년 초 한국으로 건너왔다.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을 이끄는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은 앞서 26일 이화여대 연구센터에서 열린 연구 성과 브리핑에서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연구자들과 달리 보로딘 그룹리더는 물리학과 화학을 오가며 전형의 틀을 깼다"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국경의 문이 닫혀 있던 코로나 시기에 한국행을 결심한 성과가 이제 결실을 맺었다"고 밝혔다.
보로딘 교수는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온 이유에 대해 "방문 연구원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방문만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연구를 직접 수행하며 통찰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IBS에서 직접 실험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다 보니 성과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하인리히 단장은 "연구단의 절반은 외국인, 절반은 한국인이다. 연구자들이 한국에서 연구하며 한국의 산업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리 연구단의 목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