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낮 12시55분.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 가전(CE)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VIP 주차장으로 차 한대가 들어왔다. 곧 차에 타고 있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밝고 건강해 보였다.
삼성전자 부스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겸직)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겸직) 전무를 찾았다. "딸 광고 좀 하겠습니다"며 잡은 두 딸의 손을 그는 좀처럼 놓지 않았다.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동행했고,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도 삼성전자 부스에서 합류했다.
전시장 부스로 들어선 이 전 회장의 눈은 빛났다. 세계 일류 제품들을 사서 뜯어보고 연구해보고 하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를 만들어 일류 제품들과 비교 분석해보도록 했던 것도 그였다. '선진 제품 분석'은 삼성전자가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삼성전자 경영진들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구체적인 당부도 했다. 취재진들이 몰려 전시장 관람이 쉽지는 않았지만 “LG전자 부스까지 보겠다”며 주요 부스들을 모두 돌았다. 1시간40여 분간 지친 기색은 없었다.
지난 2008년 4월 경영쇄신안 발표와 함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가족 행사나 재판장이 아닌 공식석상에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날 이 전 회장의 관람 시간‘ 1시간40여분’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지만 지난 1년8개월간의 기다림과 공백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지난 9일 생일로 이 전 회장은 만 68세가 됐다. 이제 이 전 회장의 '시계'가 멈추는 일 없이 다시 힘차게 작동할 수 있기를 재계는 기대하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을 위해 이곳을 찾은 이 전 회장은 미국에서 며칠 더 머문 뒤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해외 유치 전선에 뛰어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