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에서 하는 게 찜찜하지만 어쩌겠어요." 최근 출산휴가를 끝내고 회사에 복귀한 김 대리는 화장실을 자주 찾는다. 이제 100일을 갓 넘긴 아이에게 먹일 모유를 수유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화장실이 꺼림칙해 빌딩 지하주차장에서 수유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주차장에 내려가 이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유를 짜는 유축기에 필요한 전기콘센트가 지하주자창에 설치돼 있지 않아 주차장 수유는 포기했다.
김 대리가 근무하는 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기업이다. 시가총액도 국내 열손가락 안에 든다. 하지만 수유실이 없다. 회사 총무팀에 건의도 해보았으나 "비싼 임대료 때문에 추가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 대리는 "내 일을 계속 하고 싶은데 아이 생각을 하면 맘이 아프다"며 "연말까지만 근무하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기업이 수유시설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다. 공간이 부족해서, 예산이 없어서라는 명분을 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다. 수유시설 보유 통계도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원실에서 일부 조사한 자료는 있지만 수유시설 보유와 관련한 통계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작 수유시설을 갖추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여직원 휴게실이 있다면 칸막이를 설치한 후 모유를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 그리고 수유를 돕는 유축기 정도면 충분하다. 유축기의 경우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후원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고학력 여성의 고용률은 6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OECD 국가의 여성 고용률은 평균 79.5%다. 고용률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육아문제다.
최근 독일 헤리티지재단은 여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보통 기업보다 30% 이상 높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양성평등 원칙을 떠나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도 수유시설과 같은 여직원 을 배려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나 정치권은 "여성취업률이나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론을 되풀이한다. 기업들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연다. 이들이 정책이나 이벤트성 행사 대신 수유시설 설치와 같은 작은 실천을 고민해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