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맞벌이 vs 외벌이

[광화문]맞벌이 vs 외벌이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1.01.13 08:07

#. 앨리스는 붉은 여왕에게 손목이 잡힌 채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 경치가 계속 함께 움직이면서 앨리스는 결국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앨리스는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오랫동안 달리면 어딘가 가 있어야 하는데요." 붉은 여왕은 대답했다. "너희 나라는 느린 나라구나. 여기선 열심히 뛰어야만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단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신없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중산층들은 있는 힘껏 뛰어야 겨우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요즘엔 남편 뿐 아니라 아내까지 맞벌이 하는 게 추세인데, 그래도 살림살이가 '늘 그냥 그렇다'는 집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잠깐. 동화 속에서 붉은 여왕은 앞으로 가려면 2배 더 빨리 뛰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맞벌이를 통해 2배로 뛰는데도 다들 늘 제자리라고 말한다. 현실 세계가 동화 속 세계보다 더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시대의 우리들은 동화 속 `붉은 여왕의 세계`보다 더 강력한 마법에 덫에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일까.

#. 몇 년 전 출간돼 큰 관심을 받았던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이 있다. 하버드 법대 교수 엘리자베스 워런이 딸과 함께 썼는데, 중산층 맞벌이 가정이 오히려 위기 상황에 약하고 심할 경우엔 파산에 처할 위험도 더 크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맞벌이 부부는 이미 두 사람의 수입을 기준으로 지출을 하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실직하면 가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맞벌이 가정의 위험은 쓸데없는 과소비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에 특히 눈길이 간다. 맞벌이 가정은 지출 중에서도 바로 줄일 수 없는 고정비용(좋은 학군에 자리잡은 비싼 주택을 사는데 필요한 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 차원에서 교육 개혁이나 금융규제도 필요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재정 소방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한쪽의 소득이 없어져도 생활을 지탱할 수 있을지를 점검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장기적이고 고정적인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 일단 여성의 사회참여 문제는 논외로 하고 행복의 관점에서만 생각해보자. 맞벌이 가정은 풍족한 수입으로 인해 항상 행복하고, 외벌이집은 늘 쪼들리면서 불행하게만 살까.

꼭 그렇진 않다. 맞벌이 가정은 돈을 많이 버는 대신 부부가 둘 다 바쁘다 보니, 가정의 여러 중요한 문제를 돈으로 떼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아이와 이야기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대신 장난감을 듬뿍 사준다. 김치찌게와 고등어 조림, 나물 반찬 대신에 피자와 치킨을 시키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 자연스레 씀씀이가 커지고 정작 남는 게 별로 없다.

반면, 외벌이 집은 수입이 딸리다보니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배려가 맞벌이 가정에서 돈이 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 이로 인해 실제로 맞벌이 집의 저축은 외벌이 가정과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빚은 더 많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하고, 외벌이는 더 불안하다고 느낀다. 맞벌이와 외벌이는 우월의 개념이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의 차이일 뿐인데.

"행복으로 가는 길엔 2가지 방법이 있다. 소유물을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면 되는데 어느쪽이라도 상관없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말이다. 소유물을 늘리는게 쉬울까, 욕망을 줄이는 게 더 쉬울까. 당신이라면 어느 편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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