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IT벤처업계 '스승' 권욱현 서울대 명예교수..실패 용인하는 사회분위기 강조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교. 1년간 객원조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한 젊은 과학자는 미국 최고 명문대학 수재들이 고소득이 보장된 대기업을 가지 않고 꿈 하나를 가슴에 품은 채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이 과학자는 공대생들이 연구 업적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기업을 세우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과학자는 제자들이 그 힘을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열정을 가르쳤고, 30년이 지난 2011년 1월 그 제자 중 한 명은 한국 IT벤처 1세대 최초로 매출 1조원 달성의 신화를 썼다.
권욱현 서울대 명예교수 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석좌교수와 그의 제자인 변대규 휴맥스 사장의 이야기다. 15일 '스승의 날'을 일주일 앞두고 지난 9일 권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을 찾았다.
권 교수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브라운대학교에서 제어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76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겸직조교수로 첫 강단에 선 후 이후 모교인 서울대서 2008년까지 약 30여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밑에서 석·박사 학위를 수여해 간 제자만 127명이고 미국과 국내에 대학교수만 29명, 또 벤처를 차리고 경영활동을 하는 제자가 36명에 이른다.
◆공대생에게 비즈니스를 가르친 교수
권 교수가 제자들에게 창업의 중요성을 설득시키기 된 계기는 1년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하며 관찰한 실리콘밸리의 모습이었다. 권 교수는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구경했고 또 중소기업이 산업의 뿌리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정부에서도 중소기업 육성 얘기가 나왔고 선진국을 돌아다녀보니 일본과 대만에 비해 중소기업이 너무 부족했다"며 "외국은 공대를 나와도 비즈니스를 하는데 한국에선 학자만 하려하지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권 교수는 "그럼에도 학생들이 당시 창업을 하려면 숨어서 해야 했다, 교수가 원하는 논문을 쓰지 않으면 안됐고, 또 벤처를 하려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어느 선생이 그걸 좋아했겠느냐"며 "지금처럼 벤처캐피탈이란 개념도 없어 투자도 받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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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당시 환경에서 제자들에게 '대기업에 가서 월급 받지 말고 글로벌 기업의 리더가 되라'고 가르쳤다. 학생들은 우수한 인재라는 자부심과 벤처가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으로 기꺼이 고생하고 도전했다. 권 교수의 제자들이 세운 벤처기업은휴맥스(700원 ▲30 +4.48%)외에도 지문인식 솔루션업체슈프리마(7,770원 ▲10 +0.13%), 감시제어시스템 업체인우리기술(21,600원 ▲950 +4.6%), 통신장비업체인파인디지털(3,290원 ▲40 +1.23%), 의료기기 업체바텍(21,850원 ▲250 +1.16%)등이 유명하다.
◆"돈 벌이만 생각하지 말고, 애국심도 가져라"
최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IT붐을 계기로 시들해졌던 벤처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권 교수는 이 시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애국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요새는 세대가 바뀌어서 벤처를 하면 고생스러워서 잘 안하려 하고 개인의 돈벌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한 후,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은 과학기술이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금 유망하다고 해서 한 쪽에 몰리거나 하면 수십 년 후에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개인이 잘하는 것보다도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더 많은 성공의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벤처 1세대가 자랄 수 있었던 토양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벤처업계에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의 민주화다.
그는 "영국의 어느 기관이 우리나라 민주화 지수를 발표했는데 아시아에서 한국이 가장 자유로운 소사이어티라고 평가했다"며 "한국은 산업화와 동시에 민주화를 잘 이룩해냈고 민주화는 사회에 창의성을 가져다준다, 이제 그 효과가 벤처로 확산되야 할 시점이다"라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또 "미국에서는 벤처 캐피탈이 기술의 가치를 보고 사업 초기부터 큰 규모의 돈을 투자하는데 한국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자기 돈을 투자해 회사를 키워 놓은 후에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며 "예전보다 국내 벤처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엔지니어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고 실패를 용인해 주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배워야 할 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