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섞어 판다고 써 붙이면…"

"석유, 섞어 판다고 써 붙이면…"

류지민 기자
2012.08.13 13:41

[기자수첩]정부, 석유혼합판매 '표시' 문제 해결 없이 생색만 급해

'주유소 5845개소 중 74%가 석유제품 혼합판매를 희망'

지난 1일 정부가 석유혼합판매의 단계적 시행 방침을 발표하면서 인용한 주유소협회 조사 결과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4분의3 이상이 혼합판매를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는 혼합판매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찬반을 물었던 것이었다. 이후 정부는 혼합판매를 할 경우 주유소 내에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는 표시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표시 없는 혼합판매'에 대한 찬반을 물었던 주유소협회의 설문조사를 그대로 사용해 주유소업계의 반발을 샀다.

국내에는 1만3000여개가 넘는 주유소들이 완전경쟁체제에 가까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가격차이가 크지 않다면 꺼림칙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혼합판매'라는 표시에 고객들이 발걸음을 돌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놓고 혼합판매 표시를 할 만한 주유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주유소업계가 혼합판매 표시에 민감한 이유다.

더욱이 석유혼합판매가 8월부터 '제도적으로 가능'하다던 정부의 말과는 달리 현재는 혼합판매를 원하는 주유소라 하더라도 재계약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직 개별 정유사의 표준계약서 작성과 이에 대한 공정위의 검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장 적용할 수도 없는 석유혼합판매 정책을 '단계적 시행'과 같은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해가면서까지 서둘러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15일 정부는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유가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알뜰주유소와 함께 석유혼합판매를 7월 중 시행하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 하락을 우려한 정유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면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혼합판매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7월을 하루 넘긴 지난 1일 부랴부랴 발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아직 표준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정유사도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검토까지 얼마나 더 시일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급하게 발표를 하려다보니 어중간한 정책이 만들어졌고 이해관계자인 정유사와 주유소업계 모두로부터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주춤하나 싶었던 국내유가가 최근 다시 상승세 시동을 걸었다.

기름값을 잡겠다며 논란끝에 나온 석유혼합판매 정책이 생색내기용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