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내 중소 조선사 중 하나인 A사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선박제작비 4조원을 지원한다고 했는데 실제 집행이 되고 있긴 한 것이냐"고 물었다.
수주를 한 뒤 은행들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뜨끈 미지근한 반응들뿐이어서 취재를 통해 은행들의 진정성을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다급하면서도 답답해하는 수화기 저편의 표정이 짐작이 갔다.
지난달 말 전남 목포에 소재한 세광조선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신아SB는 워크아웃을 연장한다고 했지만 회생 시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국내 23개 중소 조선사 가운데 17개는 이미 파산했고 남은 곳들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풍전등화 상태다.
'빅3'의 그늘에 가려 이들 중소 조선사들은 정부와 금융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몰락해가고 있다. 조선소 종업원들의 대량 실직으로 지역 경제 타격도 심각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초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들이 4조원 규모로 선박제작금융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계획은 그럴싸했다. 유일하게 선박제작금융을 지원해오던 수출입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까지 범위를 넓혀 많은 조선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희망사항이었다. 은행들의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유동성이 악화된 중소 조선사들에 선박제작금융을 지원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원했다가 조선소가 잘못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거냐는 거였다.
그나마 지금껏 연명을 유지하는 중소 조선사들 대부분이 워크아웃, 법정관리 상태여서 채권단끼리 이해가 엇갈려 선뜻 지원에 나설 수도 없다고 했다.
선박제작금융 제도가 '빚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확실한 안전판 없이 은행들도 나서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 보증을 서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혈세 빨아먹는 지방공항을 또 짓겠다는 식의 대선 공약보다 중소 조선사 지원을 통한 일자리 안정 공약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