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임기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특별사면'을 두고 말들이 많다. 여·야 할 것 없이 사면을 단행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인수위 측과 야당 등 특별사면을 비난하는 쪽에서는 '권한 남용'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측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역대 정부 중 가장 적은 특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특사에 대해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며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특사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 배제,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건 제외, △중소·중견기업인으로서 경제기여도 및 사회봉사 정도, △사회 갈등 해소 등을 특사의 원칙을 제시했지만 이런 원칙에도 어긋나는 특사대상들이 거론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사면과 관련된 논란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수백년전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서도 계속됐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면(赦免)과 관련된 기록이 총 455회 나온다. 죄인을 풀어준다는 의미의 사면을 직접 적시한 것 외에도 감형이나 방면 등의 기록은 더 많다.
사면으로 적시된 기록이 가장 많았던 때는 성종 때로 89회이며, 그 다음으로 숙종 때는 59회가 기록돼 있다. 고종(46회), 세종(47회), 영조(32회) 등 재임기간이 길었던 임금일 때 상대적으로 사면에 대한 기록이 많다.
이들 기록을 살펴보면 사면령을 내렸을 당시의 상황을 적시한 것도 있지만, 사면의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언급한 기록 등 실제 사면과는 상관없이 논쟁의 기록들도 상당수다.
조선시대 사면의 이유는 왕권의 강화나 국가의 길흉화복을 비는 과정에서의 '시혜'적 측면이 강하다. 구체적 사면의 이유로는 '왕의 즉위', '세자책봉', '왕가의 혼사' 등 경사이거나, 왕이나 왕비 등 왕족의 건강 이상에 다른 쾌유를 빌거나 국가적 가뭄 등으로 흉년이 들 때 복을 빌기 위해 주로 이뤄졌다.
왕조시대에는 요즘처럼 임기가 따로 없으니 임기가 끝날 때 특별사면을 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임금이 들어서면 이를 경축하고, 더 나은 치세를 위해 사면을 실시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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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왕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뜻에 따라 사면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면의 경우 상황에 따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왕의 사면령에 대해 대신들이 부당함을 아뢰고, 왕은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세조 때 공신인 최명전과 김암이 '가족사'와 관련한 죄를 지어 유배 등의 벌을 받다가 사면 석방되는 것을 보고 사헌부는 숙종에게 그 죄가 '삼강'(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과 '오상'(인·의·예·지·신)과 관련된 것이니 석방을 철회하라고 간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별일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당시 사헌부는 "최명전은 그 아내를 침학(포악하게 대함)했고, 김암은 형제가 화목하지 못했으므로 이는 강상(인간의 도리)과 관계된 것이니 석방하지 말게 해달라"고 청했다.
당시 내용을 보면 현재의 불륜과 가정폭력과 같은 문제였지만, 국가에서 죄를 다룰 때는 엄했다. 최명전은 비첩 '삼가이'를 아껴 조강지처인 아내를 박대했고, 이것이 문제가 돼 아내와 이혼을 당하고, 유배를 가게 됐고, 그의 비첩은 곤장 100대를 맞은 후 관비로 보내졌던 사건이다.
이런 처벌이 진행된 이후 사면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 사면이 결정되자, 사헌부는 강력한 왕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세조는 이런 충언을 숙고한 끝에 사면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또 국가의 경사스러운 일에 사면령이 내려졌을 때도 백성을 괴롭히고, 곡물을 침탈하는 관리에 대해서는 사면에서 제외토록 하는 간언들도 실록에는 여럿 눈에 띈다. 오늘날에야 이미 단행한 사면을 거둬들일 방법은 없겠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나라의 틀을 세우기 위해 작은 일에도 원칙을 세우는 지혜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