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약법삼장'과 경제민주화 입법 과잉

[광화문] '약법삼장'과 경제민주화 입법 과잉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2013.07.19 06:31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하도급법', 정년 60세 의무화를 담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고액연봉 공개 관련법. 매출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 개정안', 금산분리 강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국회를 통과한 소위 경제민주화법이다. 내부거래를 제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 등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여야가 그 어느 때보다 입법전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법들의 기본 취지는 '갑을'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처벌할 법이 없어서 갑을 관계가 개선되지 못했을까. 이런 많은 법이 새로 만들어지면 과연 국민들은 행복해질까. 예나 지금이나 통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때에 따라 법을 바꿨고, 이런 입법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조선 영조 때의 일이다. 영조가 연화문에 나가 조참(아침 회의)을 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에도 법이 자주 바뀌어 곤란한 이들이 많았다. 정언(조선시대 사간원의 정6품) 관직을 맡은 '구상'이 임금에게 잦은 법령 변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구상은 "법을 제정하는 도리는 반드시 신중히 하여야 하며 법을 시행하는 요점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귀중합니다. 대전(大典)이나 속전(續典)의 법은 뒤에 변경한 것도 많은데, 비록 눈앞에서는 효과가 있을 듯하나 반드시 끝에 가서는 폐단이 쉽게 생길 것"이라며 시류에 따른 개정을 반대했다.

이어 "가령 새로 제정한 것이 옛날의 법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자주 변경하는 것은 신중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구상은 "옛 법전에 없어서 새로 제정한 것을 부득이 시행할 경우 반드시 여러 사람에게 하문해 의견이 모두 같은 뒤에 시행해야 한다"고 말하자 영조는 이에 동의했다.(조선왕조실록 영조 104권, 40년-1764년)

실록 중에는 의정부에서 태종에게 비슷한 내용을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하나의 법이 서면 하나의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통환(通患)이다. 법이 자주 바뀌니 관리도, 백성도 힘드니 이미 만들어진 법을 준수해 자주 고치지 말고 국맥(國脈)을 편안케 하라"는 내용이다.

입법 과잉을 우려하는 중국 고사도 눈에 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소개된 초나라 장왕 때 명재상 손숙오의 얘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초나라 민간에서는 바퀴가 작고 몸체가 낮은 수레인 '비거'가 유행했고, 장왕은 비거가 말에게 불편하니 수레바퀴의 높이를 높이라는 법령을 하달하라고 재상 손숙오에게 지시했다. 이에 손숙오는 법령이 자주 선포되면 백성들이 혼란스러워하니, 수레의 높이를 올리고 싶다면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문의 문턱을 높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수레를 타는 사람이 대개 높은 사람들이고, 이들은 낮은 바퀴의 비거로 문턱을 넘기 힘들어 말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런 불편을 겪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차의 바퀴 높이를 올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놓은 계책이었다.

수레의 높이를 올리는 법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방법을 택하기보다는 스스로 고쳐나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놀랍게도 반년이 지나자 고관대작들은 물론 백성들 스스로 수레바퀴의 높이를 높였다고 한다.(사기, 인간의 길을 묻다-김영수 저 중)

기원 전 206년 초한쟁패의 분위기에서 열세였던 유방이 항우보다 앞서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해 약탈을 금지시킨 뒤 궁을 나와 '약법삼장'을 공약했던 것을 모범으로 삼아볼 만하다.

유방은 진나라의 가혹한 법들을 모두 폐지하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다스리고, 남을 해치거나 물건을 훔친 자는 그에 상응해 처벌한다'는 단 세 항목만 남긴 획기적인 공약을 내놨다. 이는 민심을 얻는 역할을 했고, 항우와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됐다. 중국 사상가인 노자는 '도둑은 법령이 치밀하게 정비될수록 더 많아진다'고 했다.

지금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법들이 과연 시대가 지난 뒤에도 제대로 평가받을까. 각자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것은 아닐까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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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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