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서류전형 부활을 시도했던 '속사정'은

삼성이 서류전형 부활을 시도했던 '속사정'은

정지은 기자
2014.06.27 08:42

[이공계 취업 '갑' 시대]스펙 치중 '무늬만 전공자' 많아…전공과목 성취도 외면

지난 4월 서울 대치동 단대부속고등학교에서 삼성 대졸 공채 2차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 응시자들이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 제공=뉴스1
지난 4월 서울 대치동 단대부속고등학교에서 삼성 대졸 공채 2차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 응시자들이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 제공=뉴스1

"스펙을 보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전공 수업을 얼마나 착실히 들으며 직무관련 준비를 했는지를 보려는 겁니다."

올해 초 삼성그룹이 19년 만에 서류전형을 도입하겠다고 결정했던 이유는 '전공과목 성취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공학 전공자를 채용했는데 알고 보면 전공과목 이수 비율이 비전공자보다 낮은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게 삼성 인사팀의 토로다.

그만큼 자기 전공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대학생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전공을 이수한 경우를 걸러내고 전공에 충실한 인재를 뽑으려고 서류전형 부활을 추진한 것이다.

삼성은 서류전형을 도입해 이공계는 전공과목 성취도를, 인문계는 직무 관련 활동 경험을 중점 평가할 계획이었다. 연구개발직 지원자라면 △산학협력 과제 참여 △각종 논문상 △경진대회 수상 경력 등을, 영업마케팅직은 직무 관련 경진대회 수상과 인턴십과 같은 실무경험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이 시도는 스펙 경쟁을 부추긴다는 논란 속에 무산됐지만 새 채용방식의 핵심 골자는 스펙이 아닌 전공과목 성취도와 직무수행 능력 위주의 전문성을 중요하게 보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공과목 성취도는 전공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원자의 성실성과 책임감 등 기본자세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게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전언이다.

A기업 인사담당자는 "어느 순간부터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보여주기식 스펙을 쌓는 대학생들이 많아졌다"며 "백화점식으로 '무조건 나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안다'고 자랑하면 채용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렇듯 스펙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2000년대 초 취업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부터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려면 대외활동은 필수'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펙이 채용시장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방법으로 통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스펙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를테면 앞서 소개한 '무늬만 전공자'들이 속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탈(脫) 스펙'을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스펙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스펙보다는 직무관련 경험이나 활동을 눈 여겨 보는 게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무리 '스펙을 안 본다'고 외쳐도 믿지 않는 지원자들이 많다보니 아예 스펙 입력란을 없앤 기업도 있다. LG그룹은 올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아예 입사지원서에 수상경력과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을 기재하는 입력란을 없앴다고 이달 초 밝혔다. 실제 직무 수행능력과 상관없는 봉사활동이나 공모전, 자격증 등을 갖추는 데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원자들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분위기다. 뭐 하나라도 있는 게 채용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자격증 학원을 끊고 어학점수 올리기에 공들이고 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해 8000명을 뽑는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자가 20만명 이상 몰리는 삼성의 경우 시름은 나날이 깊어만 간다. 전공이라는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히 수행하며 직무 관련 준비를 한 지원자들을 찾고 싶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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