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삼성-LG 세탁기 핵심부품은 '자존심'?

[기자수첩]삼성-LG 세탁기 핵심부품은 '자존심'?

임동욱 기자
2015.02.17 13:27

지난 1월10일 오전 6시10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5 참관을 마치고 돌아온 국내 전자업체 및 미디어 관계자로 북적였다. 현지에서의 바쁜 일정과 긴 비행으로 인해 피곤하지만, 중요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터라 다들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입국장 입구 앞에서 삼성전자의 홍보임원과 LG전자의 홍보임원이 마주쳤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 현장에서 여러 차례 접촉할 기회가 있었지만 만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렸던 가전전시회 IFA 기간 중 발생한 '삼성 세탁기 파손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두 기업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시기였다.

두 기업은 심지어 상대방 기업의 CES 전시장 방문도 꺼렸다. 첩보작전처럼 은밀히 살짝 다녀오는 직원들도 있었다. 두 기업이 개최한 기자간담회를 참석했던 기자들은 '미묘한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공항에서 두 기업의 홍보임원들은 불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한 임원이 다가서자 상대방 기업의 임원이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나마 얼굴을 마주하며 악수를 나눴다. 동종업계 경쟁자로서 최소한의 '예'는 갖춘 셈이다.

그러나 국내 전자산업의 양대 산맥 간 갈등은 최근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검찰의 기소 결정에 지난 16일 LG전자는 이번 세탁기 파손사건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는 동영상을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 공개했다.

LG전자 측은 이 동영상을 공개한 이유로 '명예 회복'을 꼽았다. 삼성전자 측은 LG전자가 적반하장으로 자의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공개했다며 '사실 왜곡'을 주장하고 나섰다.

양측의 주장은 앞으로 재판부가 듣고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동영상 공개로 이번 사건은 사실상 '국민 여론 재판'이 됐다. 그동안 사건을 수사해 왔던 검찰은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앞으로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은 더욱 부담을 안게 됐다. 양측의 감정은 더욱 나빠졌고, 화해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이번 일의 본질은 '자존심' 싸움이다. 이렇게 잔뜩 얽혀버린 실타래는 양측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직접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

베이징의 중국 친구가 모바일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중국 언론에도 이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중국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한가하게 '자존심' 싸움을 할 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임동욱 바이오부장

머니투데이 바이오부장을 맡고 있는 임동욱 입니다.

공유